나의 공직생활 - 한 겨울의 고춧대 소탕작전
나의 공직생활 - 한 겨울의 고춧대 소탕작전
지금까지 20여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유독 기억이 많이 남는 것은 면사무소에서 근무하면서 처음 체험했던 일들이다
물론 군청이나 도청에 근무하면서도 좋은 추억거리가 많았지만 그래도 공직의 첫발을 내딛은 면사무소의 추억이 정겹게 다가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촌놈이 공직을 시작한 것은 79년, 박정희대통령의 서거와 80년의 봄, 광주민주화운동(당시는 광주사태란 표현을 썼음)으로 이어지는 정치상황이 새내기 면서기의 종 잡을 수 없는 직업관을 더욱 흔들어 놓았다..
이상향(理想鄕)으로만 생각했던 면서기의 공직생활이 우습기 짝이 없고 촌놈 자신의 못난 모습을 보면서 후회와 비난을 했던 때가 어느덧 20년이란 세월이 흘러버렸고 지금은 후배들에게 할말이 많은 추억거리의 소재가 되어 버렸다.
뒤돌아보면 도로변 논 밭농사를 우리가 주인이나 된 것처럼 행세하고, 소유주에게는 괴로움의 존재가 되어버렸던 우리들의 위치
면서기의 입장에서 보면 말도 되게 듣지 않는 원수같은(?) 주민이었다.
보온 못자리하라, 모내기하라, 벼베기하라, 논두렁 풀베기하라, 농약하라, 보리베기하라, 논갈이하라 ......
겨울이나 상관받지 않을까 하면 매상하라, 생짚깔아라, 심경(深耕)하라. 상관할 일도 많고, 관섭받을 일도 많았다.
또 다른 시각으로 보면 농민들은 그 놈의 면서기들 때문에 스트레스깨나 받았던 시절이었다.
논농사가 시작되고 농민을 들로 내몰기 위해서는 면사무소 직원이 사무실에 있는 것이 정상이 아닌 시절, 출장가지 않고 사무실 있다가 군청 확인반이라도 걸리기나 할라치면 혼이 나던 시절이었으니 과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지금 생각해보면 못된 짓도 많이 한 것 같고 주민들에도 지나친 요구도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지금의 정황으로 판단하는 것은 주제 넘는 짓이 분명한 것 같다.
식량증산이 국가적 제1목표였고, 도청과 시군정의 중점이 농산이다보니 당연히 여기에 전행정력이 몰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지사였으니 말이다.
그 어느 해 가을이었던가
그 넓디 넓은 신흥리 들판에 밀 시범단지를 조성한다며 전직원이 동원되어 몇날 며칠이고 들판에 살았던 적도 있었다.
논 주인은 한 사람도 나와보지 않고 직원들이 여비 털어 경운기를 빌어 직접 온 들판을 갈고 다닐 때 과연 우리가 할 일인가 몇 번을 되물었지만 결국은 우리가 하지 않으면 해줄 사람도, 할 사람도 없다는 결론밖에 없었던 당신의 입장이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불쌍하기도 하고 지나친 행정력을 쏟아 부은 감이 없지 않은 것 같다.
당시 촌놈은 대충 경운기를 다룰줄 알았기 때문에 우리끼리 하는 논 갈이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한 겨울에 도백이 참여하는 행사(범죄없는 마을 현판식으로 기억됨)가 우리면 00리 00마을에서 예정되었다.
그런데 행사 준비는 당연지사고 군에서 떨어진 군수 지시사항은 행사장 로선에 있는 보이는 고춧대를 다 제거 하라는 것....
머슴아 직원들은 면장 인솔하에 우리면 경계에서부터 행사 현장까지 고추만 수확하고 번 듯이 서있는 고춧대 제거작업을 해야했다.
도로에서 봐서 가시권 내에 들어 있는 고추밭이라고는 다 작업 대상이 되었고 밭 주인입장에서 보면 한 갸울에 작업할 가치가 없는 작업을 직원들의 손수 땀흘린 노동으로만 가능했다
고춧대야 우리 면서기들이 제거하지 않아도 길고 추운 겨울을 지나 봄이되면 자지러질 것이었지만 당시의 군수는 추수시기에 고춧대까지 제거하지 않은 나태한 관내 주민들의 모습을 도백에게 보여주기 싫은 충정에서 출발한 것이었지만 일선에 있는 말단 공무원으로서는 수용하기 힘든 겨울작업이었다
생두부에 막걸리한잔, 그리고 김치 몇가닥을 새밥으로 삼고 작업은 계속되었다.
이윽고 행사 당일이 다가왔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노력해서 과시해려 했던 작업 현장은 전날 엄청내린 눈으로 온 들판은 흰 솜으로 다 덮여 버렸고 그렇게 땀흘리던 고춧대 제거작업 노력의 자취는 온데 간데 없으니 일한 보람 한번 찾으려는 우리의 기대는 하얗게 평정된 세상으로 하늘의 야속함만 남겼던 때가 있었다.
보여 주려는 것은 보이지 않고 행사 당일 새벽부터 전 직원이 동원되어 지방도에서 마을까지 도달하는 길 제설작업에 매달려야 했다
부지런한 공무원의 모습을 보여주려 하였던 것일까
실적위주의 행정, 적은 시간에 가시적 성과를 보여줘야하는 전시행정의 표본이었을까
물론 민선시대에 들어서고도 아직도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노쇠한 공무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아직도 떨떠름한 뒷맛은 지울 수 없지만 ...
20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