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석자
이름 석자
김철모/시인
광복을 거쳐 6.25 전쟁이 끝나고 미국 선교사가 한 마을을 찾아 갔다가 깜짝 놀랐다. 아이들이 지나가는 개를 부르는데 다름 아닌 모두 자기의 고향 친구들 이름인 ‘메리’, ‘버크’, ‘쫑’, ‘케리’이었다. 화가 난 선교사는 고국에 돌아가 자신의 동네 개 이름을 모두 ‘영희’,‘철수’,‘영자’로 지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전만 해도 ‘바둑이’,‘노랭이’ 등이었던 개 이름들이 역사의 변혁 속에 외제 이름으로 바뀐 것이다.
법원행정처의 ‘사법부 60년사’에 의하면 이름도 의상패션처럼 유행을 많이 타고 있다. 1948년 가장 인기 있는 이름은 남자의 경우 ‘영수’, 여자는 ‘순자’였고, 그 다음으로 ‘영호’와 ‘영자’였다. 이를 10년 간격으로 보면 1958년에는 ‘영수’와 ‘영숙’, 1968년에는 ‘성호’와 ‘미경’, 1978년에는 ‘정훈’과 ‘지영’, 1988년에는 ‘지훈’과 ‘지혜’, 1998년에는 ‘동현’과 ‘유진’, 2008년에는 ‘민준’과 ‘서연’이 각각 가장 인기있는 남여 이름이었다. 또 1970년도까지만 해도 여자이름 끝자에는 ‘자,’숙‘,’희‘였고, 남자는 ’철‘자가 가장 많았다. 우리나라 국적을 가진 자중 가장 긴 이름은 과거 코미디 프로에서나 나올 법한 총 17자로 ‘박 하늘별님구름햇님보다 사랑스러우리’이고 이중국적자 중에는 총 30자의 긴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필자 역시 이름이 범상치 않아서 늘 놀림의 대상이었고 특히 군대에서의 필자 이름은 최악이었다. 그러나 독특한 이름덕분에 상대방이 기억 해주는 장점도 있다. 과거에는 성명학을 중시하여 작명소를 찾거나 집안 항렬자를 따져 짓기도 하고, 한때 순수한 한글이름이 유행하기도 했다. 특히 2005년 대법원이 개명요건을 완화하면서 개명 신청이 늘고 있다. 연세 드신 할머니들의 이름 중 소리나는 대로 등록한 경우가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김 족간이(足間伊)’이다. 한자만으로는 뜻을 알 수 없고 다만 이름으로 봐 어릴적 체구가 작았던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사랑으로, 김연아는 피겨스케이팅을 통해서, 법정스님은 무소유로 이름 석자를 알렸고, 김길태는 자신도 부르기 싫은 이름으로 사회를 경악케 한 반면, 또 한주호 준위과 6월의 호국 영령은 살신성인 정신으로 이름을 남기고 나라를 구했다. 이름 석자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국가도 브랜드를 높이자고 외치고 있고, 전북도는 ‘천년의 비상’이라는 통합브랜드로 전북의 이름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있다. 엇 그제 선거철에 이름석자를 알리기 위해 그토록 애타게 호소하지 않았던가. 이름이 개인 브랜드인 시대, 이름석자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사회공헌으로 알리면 좋겠다.
전라일보 2010년 6월 15일자 15면 '젊은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