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줄 아는 지혜
버릴 줄 아는 지혜
김철모/ 시인
필자는 시간이 날 때마다 가끔 서재 베란다에 있는 작은 캐비닛을 열고 추억이 어린 과거로 여행을 떠난다. 그 속에는 필자가 애지중지 모아 놓은 것들이 옛날 냄새를 풍기며 자리 잡고 있다. 국민학교때 받은 각종 누런 상장이며 졸업장, 성적표, 또한 공직에 들어와 받은 임용장 및 표창장, 대학원 학위기까지, 또 한참 그림 모으기에 미쳐 주머니에 몇 푼만 있으면 사 모았던 합죽선이며 소품, 병풍용 그림과 글 몇 폭, 그리고 필자가 가장 아끼는 코흘리개부터 학창시절, 그리고 집사람과 연애시절 이야기까지 생생하게 적혀 있는 일기는 귀중한 자료다. 필자는 이를 터전으로 시인이 되었다 그러니 필자의 서재는 늘 만물상이요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무질서한 잡화점이자, 세상 변화에 가장 뒤쳐진 과거로의 회귀요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삶의 박물관이다
이런 습성은 생활에도 그대로 이어져 옷부터, 신발, 가전제품, 각종 생활용품, 책 등등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장롱, 신발장, 책장, 앞뒤 베란다에 쌓아 놓고 살다보니 늘 집안은 못 쓸것들로 수북하다. 누구나 경험한 바 있겠지만 '아끼다 똥 된다'는 말이 있다. 새로운 것을 얻으면 바로 쓰지 못하고 써 오던 것부터 우선 쓰고 아끼다 보면 신제품은 유행간 구제품이 되어서야 손에 들어오니 얼마나 우둔하기 짝이 없는가. 이렇게 살다가 이삿날이면 버리게 되는데 그간 세 번을 이사하면서 그 때야 대충 정리가 된다. 그러면서 또 고민 끝에 몇 개는 싸가지고 가지만 그 물건은 새 집에서 빛 볼 일이 거의 없다
이런 선택의 문제는 단순히 물건만의 경우가 아니라 삶에 있어서 사람과 돈, 권력, 운동 등도 마찬가지다. 부(富)에 대한 쓸데없는 욕심도 그렇다. 돈이라는 게 맘대로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부의 축적 또한 명분이 중요하다. 대기업들이 부정한 경영으로 법의 심판대에 서지 않았는가, 권력도 마찬가지다. 영원한 권력은 존재하지 않으며 영원을 꿈꾸는 권력은 결국 부패를 양산한다. 그 좋은 자리를 내 놓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겠지만 억지로 정권을 잡겠다는 우둔함이 결국 스스로 파멸을 낳는 역사를 우리는 봐왔다. 운동도 그렇다. 때가 있고 체격 조건이 있는 것이다 자신의 체형을 고려치 않은 지나친 욕심은 건강을 유지하기 보다는 도리어 몸만 망가지고 스트레스만 더 유발할 따름이다.
이렇듯 물건과 사람을 얻는 것이나, 부와 권력을 차지하는 것이나, 운동을 하는 것이나 때와 자신의 분수에 맞게 욕심을 부려야 한다, 금번 세종시 수정안 부결과 월드컵의 영웅 허정무 감독의 감독 사임은 모든 것을 갖겠다는 사람들에게 얻는 것이 있으면 스스로 버릴 줄 아는 삶의 지혜를 가르친 듯 하다. 그래야 기회가 다시 오기 때문이다.
2010년 7월 19일 전라일보 15면, '젊은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