智士 칼럼(신문)

크리스마스와 검정 고무신

goldenfiber 2010. 12. 22. 10:45

 

크리스마스와 검정고무신

김철모 / 시인


 초가지붕에 목재 종탑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 지금은 자리를 옮겨 그 자취조차도 찾을 수 없는 이웃 동네 초라한 시골교회, 그 교회는 필자의 시골집에서 1키로 정도 거리였다. 믿음이 없던 필자가 유일하게 교회를 찾은 것은 성탄절을 며칠 앞두고 나눠주는 사탕 때문에 정략적으로 교회를 찾곤 하였다. 눈이 많이 내렸던 당시 검정고무신에만 의지하며 무릎까지 차오르는 눈길을 밤에 헤치고 걸어서 친구들과 가는 길은 험난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지만 동네 친구들과 같이 가는 길이었고, 사탕하나 얻어 물고 기분 좋아 돌아오는 길이기에 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 기간만큼은 잘도 다녔지만 성탄절이 지나면 믿음이 없던 필자는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해 밑창이 다 낡아 물이 새는 고무신을 보시던 아버지께서 이웃에 있는 고부장에서 검정 고무신을 사오셨다. 다들 고무신을 신고 다니는 터라 벗어 놓고 보면 네 것 내 것이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새신을 사면 의당 내 것이라는 표시로 불도장을 신발 안창에 찍어 두는 의식이 있었는데, 통상 헌 우산대를 많이 사용하여 도장을 하나, 둘 아니면 세 번을 찍기도 했다. 아니면 칼로 이름을 새기는 아이들도 있는 가하면 어떤 아이는 페인트로 표시를 하기도 했다

성탄전날, 그날따라 눈이 많이 내렸다. 사탕을 한 움큼 받으면서 제발 오늘 밤 산타할아버지가 과자며 양말이며 선물 한 아름 가져다주시라고 두손 모아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모르는 찬송가도 이사람 저사람 쳐다보며 입만 움직이었다. 이내 예배가 끝나는 시간, 교회당을 빠져 나오면서 신발장을 바라본 필자는 앞이 깜깜했다. 불도장을 찍어 놓았던 필자의 새 고무신이 자취를 감추고 만 것이다. 사람들이 다 빠져 나가면 혹시 있을까. 그러나 남은 것은 헌 고무신 한 컬레, 밑창이 휑하니 뚫어진 낡은 것만 신발장 한 구석을 유일하게 나딩굴고 있었다.

우려했던 것이 현실로 나타난 상황, 어린 마음에 마른하늘에 날 벼락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두 눈에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고, 아버지한테 혼 날 일과 당분간 밑창 나간 고무신을 신고 다닐 일이 끔찍했다. 돌아오는 길 친구들의 위안하는 말은 아예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어린아이의 충격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돌아갔다. 그 후 주님이 필자를 부르고 성당을 찾은 것은 43년이라는 세월이 필요로 했다. 사탕 몇 개에 눈먼 믿음과 스스로 신발을 관리하지 못한 잘못을 회개하면서 그동안의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이제는 하느님의 믿음으로 새싹을 돋게 한 것이다.

 

2010년 12월 22일 전라일보 15면, '젊은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