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은 풍족한 설 명절 되었으면
마음만은 풍족한 설 명절 되었으면
김철모 / 시인
설과 추석명절 그리고 집안 제사를 준비하는 어른들의 마음도 모르고 어린 마음에 우리는 이 날을 기다렸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매번 챙겨야 하는 어른들의 맘을 당시 우리가 일일이 헤아리는 것은 사치였는지 모른다. 그것은 평소 먹어 보지 못하는 떡이며 부침개며 여기에다 꿈 잘 꾸면 곶감도 이날은 하나 더 얻어먹을 수 있어서다. 절구통에 절구로 떡쌀을 찧고 기다렸다가 김 새 나오는 자리 시루변이라도 얻어먹으면 말 그대로 금상첨화였다. 곶감하나 차지하려고 제사시간까지 기다리다 못해 결국 서너 짐 되는 눈꺼풀 무게에 무너져 나의 몫을 잃은 일이 어디 한 두 번이던가, 설날아침 일찍 어른들에게 세배올리고 떡국 한 그릇에 한살을 또 채운다. 지금은 떡국 먹기가 두렵지만 그때야 어디 그랬는가, 한 그릇 더 못 먹어서 아쉬운 시간들이었지. 차례를 지내기가 무섭게 대문 밖에 기다리는 아이들과 어울려 너무 이른 시간이라는 어른들의 야단을 뒤로 한 채 이른 시간부터 동네 한 바퀴를 도는 세배 순회(?)가 이어진다. 한집도 빼 놓지 않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다 보면 다양한 음식을 먹어 보는 음식 체험이 이어진다. 그중 우리가 가장 선호하는 집은 단연 아랫마을에 있는 기와집이었다. 기와로 이은 대여섯 칸 되는 사랑채를 가진 그 집은 그 사랑방에 겨울이면 밤마다 어른들이 모여 동네 소식을 다 전하던 열린 광장이었다. 더구나 그 집은 어린 꼬마 세배 객들에게도 융숭한 대접이 이어져 동네아이들의 선망의 집이었다. 이런 저런 음식에 고구마로 고은 조청에 쑥떡 한입하고 가지각색의 한과며, 곶감과 대추까지 한손에 넣으면 그날은 임금 수라상이 부럽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제, 세월은 흘러 아이들 울음소리도, 몰려다니는 세배 객들의 행보도 그 어디 찾아 볼 수 없는 고향 마을 풍경은 쓸쓸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명절이면 그래도 고향 찾은 사람들로 잠시나마 온기를 느꼈던 마을이 올 설은 그놈의 구제역 때문에 유난히 인심 사나운 적막강산의 고향이 되고 말았다. 아예 고향을 찾는 자식들에 오지 말라고 손사래를 쳐야하는 상황에다 모처럼 새 단장하고 찾아오는 객지의 일가친척의 차량에는 몰인정하게도 우유 빛 소독약 세례를 주어야 하는 야박힌 상황이 되었으니 올 설 명절은 유난히도 추운 날씨에 찬 바람이 더 쌩쌩 불게 생겼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설령 고향 실정이 그렇게 딱하지만 맘만은 따뜻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올 설 명절은 비록 몸은 고향에 가지 못하지만 ‘청정 고향 전북’을 위해서 마음만으로는 서로 소식을 전하는 훈훈한 고향의 정을 느꼈으면 좋겠다.
2011. 1. 28 일자 전라일보 15면 '젊은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