智士 칼럼(신문)

그 옛날 대보름날이 그립다

goldenfiber 2011. 2. 19. 10:36

 

2011년 2월 18일 전라일보 15면 '젊은 칼럼'

 

그 옛날 보름날이 그립다

김철모 / 시인

 

 

어제가 정월 보름날이었다. 어릴적 보름날은 여느 명절에 못지않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쥐불놀이다, 논, 밭두렁을 태우는 이유야 필자가 공직에 들어온 뒤 안 사실이지만 각종 농작물 병충들이 풀 속에 뱉어놓은 병충씨알이 겨우 내 자라서 다음 해 농사를 망치는 것을 막자는 거지만 당시 제대로 알지 못한 체 단순히 전해 내려온 풍습 정도로 생각해 온 터라 불장난 그 자체가 재미있었다. 가장 좋은 불쏘시개는 짚으로 묶은 볏단도 좋지만 자동차 타이어를 잘게 잘라 만든 그 줄에 불을 붙여 떨어지는 불똥으로 쥐불놀이를 하면 아주 제격이었다. 당시는 논두렁, 밭두렁을 누가 먼저 태우느냐를 놓고 시합을 하기도 했다. 이내 보름달이 떠오르면 동네 어귀의 야산에 동네 아이들이 모이기 시작하는데 빈 깡통에 구멍을 뚫어 만든 불깡통을 들고나와 밑불을 넣고 솔방울과 마른 나무 조각들을 넣어 돌리면 그야말로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야성을 이룬다. 또 깡통을 돌려 생긴 원의 모습이란 보름달빛과 어울려 가히 장관이었다. 불깡통에 가득 불 달은 숯이 채워지면 '망월이야'하며 하늘 높이 던지게 되는데 긴 타원형을 그리며 하늘에 뿌려지는 불티가 은하수를 만들 때 소원을 빌기도 한다. 요즘 행사장에서 이뤄지는 불꽃놀이에 비하면 형편없지만 블깡통이 만들어 낸 푸물선과 점점의 불 방울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불꽃 쇼였다

그리고 대보름에는 윗마을과 아랫마을이서로 불 싸움을벌이는데  필자가 살던 시골은 이웃 탑생이(탑립)마을과 연례행사를 치뤘다. 주로 불로 상대를 공격하고, 불이 다 소진되면 대나무 장대로 상대를 공격하기도 했다. 탑생이 앞 제방에 미리 침투하여 잠복하고 있다가 주몽이 한나라군을 물리치듯 우리 동네 쪽으로 공격 준비를 하고 있는 탑생이 아이들을 선제 공격하기도 했다. 불 싸움은 청장년까지 참여하여 밀고 당기면서 마을의 단합과 어린 아이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준다. 또한 이때는 이런 아이들의 놀이와 달리 어른들은 마을의 안녕과 사람들의 건강과 장수를 비는 굿(풍물)을 치기 시작하고 집집마다 오곡밥을 서로 나눠먹기도 하였다.

이제 어머니의 정이 가득한 대보름의 음식을 맛볼 수 없는 지금, 그런 향취를 맛보려고 찰밥과 나물을 사서 먹어 본다. 더군다나 금년에는 구제역으로 많은 보름날 행사가 취소되는 상황에서 지역사람끼리 한마음이 되는 불 싸움과 마을 굿으로 지역의 단합을 기하고, 보름날 오곡밥을 서로 나눠먹으며 서로 정을 나누는 그때 그 풍습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