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제11회 요안 루갈다제

goldenfiber 2011. 9. 25. 12:54

 

 

 

 

 

 

 

 

 

제11회 요안 루갈다 동정부부 현양 대미사가 열린 전주 치명자산

요안 루갈제는 한국 순교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진주'로 충아 받고 있는 유중철(요안)과 이순이(루갈다) 동정부부의

거룩한 삶과 정신으로 표양으로 삼아 본 받기 위한 기념제로써 신유박해 200주년이 되던 2001년 시작되어 매년

전주교구에서 개최하는 순교자 현양문화 축제이다

 

초대 조선 천주교회의 핵심적 인물이었던 호남의 사도 '유항검'의  아들이자 며느리였던 유중철 요안과 이순이 루갈다

1754년 완주군 이서면 초남이에서 태어난 유함검은 진산사건으로 한국교회 최초의 순교자가 된 윤지충과 함께

전라도 지방에 복음을 전파하는데 거의 절대적인 공헌을 한 초대 조선 천주교회의 핵심적인 인물이다

윤지충과 이종 사촌간, 권상연과 외종사촌간인 유항검은

1784년 늦은 가을 양근의 권철신 집을 찾아가 그 집에서 천주교 서정과 천주상 등을 목격하고

권철신의 아우 일신에게 교리를 듣는데 마침내 권일신을 대부로 하고 이승훈 으로부터 세례를 받게 된다

 

고향에서 암암리에 전교 활동에 힘쓰던 그는

1786년 조선 천주교회의 창설 주역이자 가성직제도를 설정한 이승훈에 의해 권일신, 홍낙민, 최창현, 이존창 등과 함께 신부로 임명되나

1787년 그는 가성직 제도의 부당성을 깨닫고 이승훈에게 그 시정을 요청하는 한편

북경에 밀사를 보내어 오류를 범한 가성직제도에 대해 정죄하고 선교사들의 지시를 받도록 촉구했다

1794년 최초로 조선에 입국한 외국인 선교사인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초남이 유함검 집에 머물며 성사를 집전하고

강론을 하는 한편 그의 아들 유중철은 첫 영성체를 하게 된다.

 

중철은 부친에게 허락을 받고 평생을 동정으로 살기로 작정하였는데

서울에서도 한 유명한 신자집안의 딸이 동정을 맹세했다는 소문이 주문모 신부의 귀에 들어가

신부의 주선으로 1797년에 초남리에서 전대미문의 혼례식이 거행되었는데

유 요한과 이 누갈다가 '평생을 오누이처럼 살면서 동정을 지키겠다'는 동정 서원을 하면서 혼례를 올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동정부부였다.

 

1801년 신유박해의 칼바람은 이 곳 전라도 지방  초남이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사학의 괴수'로 낙인 찍힌 유함검은

전라도 지방에서는 가장 먼저 붙잡혀 혹독하게 고문을 받고 서울로 압송되었고

외국인 신부의 입국을 도와 내통했고 사교를 믿었을 뿐만 아니라 청나라에 청원서를 냈다는 죄목으로

대역부도(大逆不道)의 죄를 적용애 머리를 자르고 사지를 자르는 능지처참형을 얻도 받게 되는데

다시 전주 감영으로 이송된 그는 그해 9월 17일 남문 밖에서 참수되는데 그의 나이 46세였다.

 

그리고 그의 집터는 파가저택(破家저宅)되어 연못으로 변하고,

이후 장남 유중철, 부인 신이, 며느리(동정부인 이순이), 둘째 문철(요한), 조카 중성(마태오) 등의 가족이 체포되었고

중철과 문철 형제는 10월 9일 전주감영에서 옥사하고,

12월 28일 부인 신이, 며느리 이순이, 제수 이육희, 조카 유중성 등은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하게된다.

 

이들의 시신은 일꾼들과 신자들이 거두어 백사발에 각각 이름을 적어 완주군 이서면 제남리에 가매장했다가

113년후인 1914년 전동성당 축성기념으로 지금의 전주 치명자산에 모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