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fiber 2011. 11. 4. 12:50

 

 

2011년 11월 4일 전라일보 15면, '젊은 칼럼'


수능 날


김철모/시인


입동이 지나고 이튼 날, 11월 10일은 애비도 자식도 심판 받는 날이 되었다. 수능 날이자, 애비는 예산 내는 날이기 때문이다. 수능 날은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가장 큰 명절아닌 명절이 되었다. 그동안도 숨을 제대로 못 쉬었지만 그날은 더욱 모두가 숨도 제대로 못 쉰다. 비행기도, 열차도, 버스도, 그리고 퀵 서비스의 아저씨도 그 날만은 경적을 울리지 못한다. 1년의 농사, 아니 초등학교 6년에 중학교 3년에 그리고 고등학교 3년을 도합하여 12년의 농사를 결산하는 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난 11개월 전, 작은 아이가 재수를 하겠다는 말에 우리 부부는 막아서지도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 길이 고행의 길이고 힘든 긴 여정의 시간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그랬다. 더구나 대학 진학을 앞두고 아이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이의 굳은 결단을 막을 힘도, 설득할 명분도 없었다. 아이가 꿈을 이루겠다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얼마나 고민하고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일까 생각하니 우리 부부는 무장 해제된 기분으로 ‘네 각오가 그렇다면 한번 해봐라’ 라는 짧은 몇 마디의 동의어만 존재할 뿐이었다. 그리고 지난 11개월의 시간들, 집에서 인터넷 강의로 시작된 아이의 고생길은 긴 장마와 불볕더위의 터널을 지나 이제 단풍의 계절 그 터널로 진입하고 있다. 그리고 이내 그동안 고생했던 짐을 덜어 놓는 시간을 맞은 것이다.

 이날 하루에 자신의 운명을 맡겨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그들의 그런 모습을 안타깝게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가족 또한 그 누구도 이를 대신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 하루가 자신의 직업을 결정하고, 인생을 결정하고, 뒤를 이를 2세에게 자신의 정형화된 모습을 전해야 하는 중대한 일이 되어 버린다는데 우리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나라만이 유독 심한 지나치게 과열된 진학 열과 학벌주의 병패, 우리 스스로가 정하고 우리가 원칙을 세우고 우리가 감독하는 그 틀 속에 그들을 몰아 세워 놓고 이제는 모두들 그들을 안타깝게만 보고 있으니 우리들의 자기모순이지 무엇이겠는가. 

이제 그동안 걸치고 있던 무거운 모든 굴레를 다 벗어 버리고 공항상태의 기분을 느끼는 그들에게 이제는 따뜻한 손을 잡아 주는 그런 여유가 우리에게 필요한 때이다. 자신의 꿈을 키우기 위해 그간 참아 왔던 여러 일들도 많을 것이고, 숨 죽여 왔던 지난날을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휴식과 새로운 일을 찾아 시작하는 이런 아이들에게 그동안 못했던 많은 대화와 가족애도 한번 나눠보았으면 한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 긴 산통을 앓은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새로운 꿈을 마음껏 꾸는 젊은 친구들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