智士 칼럼(신문)

늦가을 끝을 잡고

goldenfiber 2011. 11. 22. 20:22

 

 

 

2011년 11월 22일 전라일보 15면, '젊은 칼럼'

 

 

늦가을의 끝을 잡고


김철모/ 시인



지난 주말 일상에 찌든 시간을 쪼개어 동해로 달려갔다. 지난 몇 달 동안 내년도 도 살림살이를 짜느라 진이 빠진 몸을 이끌고, 또한 지난 1년간 수능 준비하랴 고생한 작은 아이에게 답답한 마음을 떨치고 바람이라도 쐬어줄까 달려 간 길이었지만 멀기는 확실히 멀었다 전주에서 출발하여 서울을 거쳐 동해까지 갔다 왔다한 거리가 무려 1,300 키로 미터나 되니 장거리임에는 분명했다. 단풍 따라 남으로 썰물처럼 빠져 나간 많은 사람들, 그래서 한가하리라는 기대와 달리 그 틈새를 노리는 사람들로 외설악과 동해는 사람소리로 가득하였다.

일단 울산 바위 바로 밑 외설악에 숙소를 정한 우리 가족은 주변 관광지를 찾아 나섰다. 먼저 강릉으로 내려가 오죽헌을 들러 율곡 사상을 배우고 좀 늦은 시간이었지만 정동진을 찾아 모래시계 소나무를 보면서 금강산행 기차를 기다려 보지만 기다리는 열차는 오지 않고 정동진역은 어두워진다. 속초로 올라오는 길에 해변에 유럽풍의 한 리조트를 방문하여 잠시구경, 우리 식구야 맘먹고 간 것이지만 요일 감각 없는 휴양소의 사람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월요일 출근 걱정도 없이 일요일 밤 라이브를 들으며 와인 잔을 기우리거나 연신 칼질을 해 대는 사람들을 보면서, 밤낮으로 야근 아니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고 오늘도 밤을 밝히는 동료들을 생각하니 혼자만 스트레스 풀자고 동해로 피신 온 필자 자신이 미안했다.

돌아오는 날 내년쯤이면 군대를 갈 작은 아이를 데리고 통일 전망대로 향했다. 멀리 금강산 자락과 북한군 관측소가 보이는 걸 보고 아이는 다소 긴장한 듯하다. 눈앞에 펼쳐진 휴전선 옥색 동해바다의 아름다운 모습, 먼 바다에서 시작된 파도가 백사장에 닿으며 새하얀 물보라로 변하는 그림같은 장관과 달리 늦가을, 겨울 준비하는 북녘 땅은 바로 턱 밑까지 전개된 철도와 도로는 하루 빨리 남북을 달리고 싶어 안달이지만 정작 이번에도 적막에 갇혀 있었다. 가는 길은 서울-춘천간 고속도로를 달려 인제와 원통을 지나 훤하게 뚫린 미시령 터널을 마다하고 이제 오 가는 나그네를 기다리는 가게도 커피 자판기도 자취를 감추고 거칠어진 바람만 기다리고 있는 미시령 옛길을 넘어 우리 가족은 이렇게 동해로 통했고, 돌아오는 길은 통일 전망대에서 간성을 거쳐 구불구불 아직도 정비되지 않은 진부령을 넘으며 이번 가을 여행을 마쳤다. 추천하건데 지금이라도 백설이 나서기 전에 늦가을의 끝자락을 잡고 여행을 한번 떠나 일상을 떨치고 지친 심신을 추스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