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는 밤
2012년 8월 7일 전라일보 15면, '젊은 칼럼'
잠 못 이루는 밤
김철모 / 시인
보름 넘게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계절적으로 보면 8월에 들어섰고, 말복절이니 더운 날씨야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7월 중순부터 시작된 올 더위는 그 기세가 꺽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으니 참으로 걱정이다. 더구나 예년 같으면 태풍이 지나가면서 한번쯤 이 불볕더위를 식힐 법도 한데 올해의 경우는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단비 때 잠시 맛만 보여주고는 용케도 태풍까지 피해 다니고 있으니 전주를 비롯한 도내 곳곳이 불가마에 들끓고 있다. 특히 밤새 이뤄지는 바람한 점 없는 열대야는 밖에 나가도 시원함을 기대할 수 없으니 더위와 민생고에 지쳐 있는 우리 모두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어릴 적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매미소리 벗 삼아 더욱 날씨를 피해 풍뎅이도 잡을 겸 고향 뒷산 서당봉 밤나무 그늘에 잠시 더위를 식히곤 했다. 그래도 힘들면 동네친구들과 쇠절골에 가 흐르는 시원한 물에 몸을 식혔던 생각이 난다. 원래 자연산 동네 빨래터였던 쇠절골은 더운 여름밤이면 동네 아낙들의 등목장소로 활용되기도 했는데 위에서 일은 흙탕물로 빨래가 엉망이 되었다고 쫓아오기라도 하면 발가벗었던 우리는 앞가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해가 지고 나면 일찍 저녁을 끝내고 동네어른들은 집 앞 공터로 모이기 시작하는데 밀짚으로 엮은 멍석을 깔고 앉아 모기 불을 가까운 곳에 놓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기 시작한다.
나이 먹어 군대가서 나이어린 선임한테 맘 고생했던 이야기부터 6,25 전쟁 중에 살아 돌아온 이야기, 일본 치하에 순사들한테 혼났던 이야기, 마른 논 물대기 위해 밤새워 무자위 돌리며 도깨비와 대화했던 이야기 등 한 사람이 보따리를 열기 시작하면 바로 옆 사람으로 전염되어 줄줄이 사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굳이 호랑이 담배 먹던 옛날이야기가 따로 필요 없이 예전에 몸소 겪었던 이야기만 풀어 놓아도 강을 이뤘다. 북두칠성을 필두로 밤하늘에는 별이 총총하고, 은하수는 견우와 직녀를 위해 물결치고 있었다. 반딧불은 온 동네를 가로등 대신 훤하게 수놓았던 그때, 동네 아줌마들은 모기소리만한 라디오 소리에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숨죽여가며 연속극을 들으면서 더운 여름밤을 잊곤 하였다.
요즘처럼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연 이어지는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밤, 더구나 런던 올림픽 중계를 보다가 잠 못 이루는 밤을 지내면서 새삼 40여년 전의 고향 밤 풍경이 눈에 선하다. 그래도 다행한 것은 런던에서 전해오는 우리나라 메달사냥 낭보가 힘든 우리의 더위를 식혀 줄 뿐이다. 이런 기쁨 소식이라도 없었더라면 어찌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