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마실 나온 피카소
전주 마실 나온 피카소
김철모 /시인
필자는 퍽이나 그림을 그리는데 소질이 없었다. 물론 시골에서 태어나 요즘 아이들 다닌다는 미술학원 문턱 하나 넘지 못한 교육적 차별이라는 시대적, 지역적 한계도 있었지만 본래부터 소질이 없었던 이유가 더 크지 않았나 생각된다. 남이 가지고 다니는 크레용이나 크레파스와 스케치 북 한 벌 제대로 가져 보지 못했던 시절, 형들로부터 대물림된 토막 난 크레파스 때문에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는 자책의 연속이 스스로 자신을 억죄고 그나마도 없는 소질의 싹을 더 자신 없게 잘라버린 요인인지 모를 일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들을 보노라면 부럽기도 하고 멋지게 그림을 그려 보고도 싶었던 시절이 이제는 가고 지금은 아예 그럴만한 여유도, 생각도 없는 나이가 되어 버렸으니 안타까움의 연속이다.
이번에 ‘전주에 마실 나온 피카소’를 맞이하면서 지난 3월 공무로 스페인 말라가를 방문 했을 때 피카소의 생가를 찾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1983년 예술가의 기념관으로 지정 운영되고 있는 피카소 생가 내 작품을 보면서 학창시절 들어 봤던 그 이름과 이해 못할 그의 그림을 관람하였고 시공을 초월한 만남을 가지면서 메르세드 광장에 있는 피카소의 동상을 에워 잡고 기념 촬영을 하고 돌아 왔다. 그런데 이제는 피카소가 전주를 마실 나왔으니 자의적이지만 그 때의 훈김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닌가 생각된다. 이번에 나온 세계거장들은 입체파 피카소에 그치지 않고 입체파 이전의 마네와 세잔, 보나르가 동행하고 색채의 마술사 샤갈 등이 함께 한다. 오는 10.19부터 4개월 동안 모악산 자락 풍광 좋은 도립미술관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그들이 이제는 전에 미술책이나 세계사 책에서나 볼 수 있었던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번 거장전은 피카소와 그 전후, 샤갈과 에콜 드 파리의 서정 그리고 세계대전 전후(戰後)의 세계미술, 특별전, 추상의 세계 등 4부로 꾸며진다. 먼저 입체파 이전의 인상주의의 마네와 피사로, 후기 인상주의 세잔과 로트렉, 보나르 그리고 독일의 표현주의 에리히 헥켈과 파이닝어의 작품이 선을 보이고, 대상의 형태를 기하학적으로 재해석한 후 다시 점에서 바라본 이미지를 하나의 화면에 입체적으로 표현한 큐비즘(입체파)의 주도자였던 피카소는 이번 전시의 대표적 작가다. 또한 입체파이후인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 파리화파를 뜻하는 에콜드 파리와 제1차 세계대전의 충격을 미술에 표현한 다다와 초현실주의 그리고 팝아트의 진수도 볼 수도 있다. 모처럼 우리 고장을 마실 나온 샤갈과 피카소의 동료들을 이제 우리가 나서 흔쾌히 맞이하며 우리의 자긍심을 스스로 가져보자.
피카소 생가 앞 동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