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헌과 형장터 성지
피금각
김제형장 터
김제동헌과 김제시 교월동에 위치한 김제형장터, 전라도 김제의 가난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난 한정흠 스타니슬라오는 먼 친척인 유항검으로부터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고, 주문모 야고보 신부가 전주를 방문했을 때 세례성사를 받았다. 그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유교식 제사를 폐지하기도 하였다.
1801년 3월 신유박해 때 체포되어 전주감영으로 끌려가 혹독한 문초와 형벌을 받았으나 조금도 굴복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열심한 신자인 김천애 안드레아와 최여겸 마티아를 동료로 맞이하게 되었다. 한정흠과 동료들은 한양으로 압송되어 문초를 받았다.
한정흠은 고향 김제로 다시 이송되어 김제 옥에 갇혀 있다가 며칠 후인 1801년 8월 26일에 체포 5개월만에 장터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45세였으며 그가 순교한 형장터는 현재 시장이 들어서 있다.
형조에서 내린 사형선고문에는 “한정흠은 제사를 폐지하였으며 천당으로 일찍 가지 못한 것을 오히려 한탄했다. 그는 죽음을 삶처럼 보았고 그릇된 도리로 많은 이를 유혹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죽음을 삶처럼 생각한 순교자들의 굳센 믿음에서 웰 다잉(참된 죽음)이 곧 웰 빙,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임을 일깨워준다.
한정흠 스타니슬라오는 2014년 8월 광화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참석한 가운데 복자 품에 올랐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순교터인 이 곳은 현재 공영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고 그 어디 하나 순교터라는 그 흔한 표지석하나 서 있지 않아 현장을 찾은 순례객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김제동헌과 100여미터 떨어진 순교의 현장 현장터에 조만간 작은 흔적만이라도 남겨 이땅에 믿음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 놓은 한정흠 스타니슬라오 복자의 뜻을 기리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