智士 칼럼(신문)

백제왕궁후원을 거닐어보자(익산신문170814)

goldenfiber 2017. 8. 15. 22:22



백제왕궁, 후원(後苑)을 거닐어 보자

 

익산부시장 김 철 모

 

일찍부터 찾아왔던 더위, 그 끝자락을 보일 날도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일찍 핀 꽃이 일찍 지듯 더위도 그랬으면 참 좋겠다. 공직생활 38년 중 29년을 도청에서 청춘을 바친 필자로서는 익산 생활이 집 떠나 온 이등병의 편지처럼 낯설고 물설었지만 따뜻하게 맞아 준 시민들 덕분에 안착하여 본연의 업무에 전념하게 되었다. 정읍에서 태어나 자라고 정읍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필자는 고향 정읍에 대해 얼마나 알고 살아 왔을까하는 질문을 갑자기 던져본다. 내장산과 고부군수 조병갑, 동학혁명 여기에 좀 나간다면 정읍 쌀 정도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필자의 저장공간 한계이다. 그런 면에서 제2의 고향 익산에 느끼는 감정은 남다르다. 익산하면 1400여년 세월의 풍파에 시달리며 주저앉은 미륵사지 석탑을 사람들은 기억할게 뻔하기 때문이다. 또 보석과 연계한 수출자유지역, 섬유의 도시, 그리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픈 상처의 이리역 폭발사고, 그리고 근대의 상징 이리역과 익산역을 기억할 것이다.

 

이제 백제왕궁과 후원을 서동과 선화공주가 되어 우리 시민부터 거닐어 볼 때가 되었다. 백제 왕궁은 왕궁리유적을 발굴 조사하는 과정에서 왕궁내부 구조와 외곽 담장이 조사되었다. 남측에 4단의 동서 석축을 쌓아 대지를 조성해 의례와 정무, 생활공간을 배치하고 북측 절반은 자연 구릉을 이용한 후원과 당시 최고의 귀중품인 유리와 금제품을 세공하는 공방으로 활용하였다. 후원은 정원과 정원으로 물을 공급하기 위한 수조시설, 집수시설, U자형 대형 수로, 곡수로와 방형초석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백제 왕궁 후원의 가장 특징적인 것은 U자형 대형 수로를 이용하여 후원의 물 흐름을 조절하면서도 수로 내부에 조경석이나 자연석을 세우고 바닥에는 자갈돌과 강자갈을 깔아 정원의 역할도 겸했다는 점이다. 더구나 고대 도성중 궁궐과 후원의 유적이 나온 곳이 이 곳 익산 왕궁리유적이 유일하여 사료적 가치는 더 크다. 서울 풍납토성에서 시작한 백제의 도읍지는 웅진(공주)시대와 사비(부여)시대가 전부인 것처럼 받아들여진 것이 그간의 통설이었지만 이제 익산 왕궁 궁궐 유적이 발굴되면서 백제 역사를 다시 써야 할 판이다.

아침저녁으로 서동 무왕은 선화 왕비와 이 곳 궁궐담장을 따라 또는 U자형 수로를 따라 거닐어 바로 이곳 왕궁 후원에 당도했을 것이다. 새싹 돋는 새봄에 동쪽에 왕실사찰인 제석사를 바라보면 왕실의 무궁함을 기원했으리라. 그리고 북서쪽에 위치한 자신의 태생지 마룡지와 오금산을 바라보며 어머니를 그리워했을 것이며 또한 멀리 보이는 용화산을 바라보며 미륵을 빌어 국태민안을 빌었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 시는 총 36억원을 투입하여 공방과 화장실 유적, 정원 유적에 대한 정비를 완료하여 백제 왕궁과 왕궁 후원을 찾는 많은 분들에게 고대 궁궐의 볼거리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제 우리는 1400년 전으로 타임캡슐을 타고 날아가 서동과 선화공주가 되어 봄 즉하다. 당시의 무왕과 선화공주가 되어서 휘영청 달 밝은 밤에 왕궁후원을 거닐어 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비록 하루하루의 삶이 고달프고 힘들어도 서동과 선화가 되어보자. 1400여년 전의 서동과 선화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익산천도의 뒷이야기와 이제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는 익산시대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익산의 풍류를 즐기면서 삶의 여유를 가지고 백제 왕궁 후원을 노닐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