智士 칼럼(신문)

춘래불사춘(2003익산신문)

goldenfiber 2020. 3. 9. 20:52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김철모(시인, 전 익산부시장)

 

온 산과 들에 봄 내음이 물씬 풍기는 3월이다. 경칩이 지나고 춘분지절이니 그럴 만도 하다. 남녘에는 여지없이 매화와 산수유가 피어나고 필자가 살고 있는 경덕재(經德齋)에도 매화와 명자가 웃기 시작했으니 분명 봄이다. 하지만 지금 계절만 봄이지 사람들 마음은 아직도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이다. 그러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할 수 밖에 없다. 봄은 봄이로되 봄 같지 않은 봄이다’. 원래 중국고사에서 나온 말로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하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에서 유래되었다. 이는 오랑캐 나라에 꽃도 없고 풀도 없으니 봄이 왔건만 봄 같지 않다는 말이다.

중국에는 4대 미녀가 있었는데 와신상담의 오왕 부차의 여인이었던 서시(西施), 그 미모로 달이 숨어버리고 꽃이 부끄러워 한다는 말을 남긴 초선(貂蟬), 당 현종시절 절세미녀 양귀비(楊貴妃)와 더불어 왕소군(王昭君)을 꼽는다. 이 고사는 이중 왕소군 이야기이다. ()나라 원제는 전국에서 모집한 후궁들이 하도 많아 일일이 얼굴을 볼 수 없어서 모연수(毛延壽)라는 궁중 화가에 명하여 후궁들의 초상화를 그려 바치도록 하고 마음에 드는 후궁을 낙점하였다. 그러자 가진 집 출신 후궁들은 뇌물을 주면서 자기 얼굴을 잘 그려 달라고 간청을 했는데 왕소군만은 집안이 가난하여 뇌물을 주지 않아 모연수는 그녀를 매우 추하게 그려 바치게 되었고 황제는 왕소군을 5년동안 곁에 두지 않았다. 그러던 중 흉노족의 왕 호한야(胡韓耶)가 원나라를 찾아와 원제의 사위를 자원하자 공주보다는 후궁중 하나를 주기로 마음먹고 주연은 베풀었는데 호한야는 왕소군을 점찍었고 연회에서 절세의 그녀를 처음 본 원제는 매우 격노하여 궁중화가였던 모연수를 참수하고 말았다. 원제는 부랴부랴 호한야에게 혼수를 준비해야 한다며 시간을 벌고 왕소군을 미앙궁(未央宮)으로 불러 사흘 낯 밤을 함께 보내고 아쉬운 이별을 하게 된다. 사후 가을이 되어 북방의 초목이 모두 누렇게 시들어도 오직 왕소군 무덤의 풀만은 푸르름을 잃지 않고 있기에 청총(靑塚)이라 하였다고 한다. 후에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왕소군의 슬픈 사연을 노래한 시 소군원(昭君怨)에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적었다

 

작년부터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요즘 코비디(COVID)19의 창궐이 우리나라 경제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감염 불안감으로 연일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새벽부터 두세 시간은 기본으로 줄을 서야하고 그나마도 다만 몇 장이라도 마스크를 구입하면 횡재이다. 사람들이 접촉과 외출을 삼가하다보니 음식점도 유원지도 사람이 없다. 친구는 멀어졌고 부모 자식 간에도 상봉을 서로 꺼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서로 살아 남기위한 방법이다. 이른 봄이면 남쪽으로 매년 봄 마중 나가던 필자도 집사람과 데이트도 금년은 물 건너갔다. 유일한 방법은 삼식새끼를 집에서 해결하야 하니 준비하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힘들고 미안하다. 매년 중국발 미세먼지가 대한민국을 괴롭히더니 이번에는 중국발 바이러스가 한국을 들쑤시고 있다. 하루빨리 코비디 19를 잠재우고 바닥을 드러낸 경제를 살려야 서민이 산다. 봄꽃은 피어나고 있다. 계절은 시국이 어떻듯 개의치 않는다. 봄꽃이 활짝 피던 날 분명 중국산 바이러스 열꽃은 자지러질 것이다. 모두 구국의 일념과 독립운동의 정신으로 이 국난을 이겨내고 봄꽃을 피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