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봄다워야 아름답다.
봄은 봄다워야 아름답다
사람은 사람다워야 하고
어른은 어른 바워야 하고
애들은 애들 다워야 한다.
사람이 사람답지 않거나
어른이 어른답지 않거나
애들이 애답지 않다면
우리는 흔히들
사람답지 않은 사람을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라하고
어른 답지 않은 사람을 몰지각한 사람으로
애답지 않은 사람을 애 늙은이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그래서 세상에 나와 있는 모든 만물은 있어야할 곳, 제자리에 있을때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군인 군인의 자리에 있지 않고 일반사회에 뛰쳐나와 사회경찰임을 자임한 때가 있었고
노동자가 일테 있지 않고 길거리에 나 앉은 적이 있었고
학생이 배움의 터전에 있지 않고 길거리에 뛰쳐나온 적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들은 구국을 외쳤을 것이고, 인권과 생존권을 외쳤을 것이고, 민주주의를 외쳤을 때이다
사람들이 자기가 속해 있는 자리에 있지 않고 다른 곳에 있다면 그것은 사회의 혼란을 의미하고 가치관의 혼돈을 가져오며 법과 질서가 무너지게 된다.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다는 것은 본연의 임에 충실하다는 뜻이다
국방과 생산성과 학문연구 그것이 그들에게 부여된 임무이자 의무이기 때문이다
중국 고사에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하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이란 말이 있다.
이는 '오랑케 나라에 꽃도 없고 풀도 없으니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말로 민주화운동이 한참일 때 정치인들이 많이 인용한 글귀이다
이 이야기는
중국 4대 미녀로 월(越)나라의 절세미녀이자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여인으로 유명한 서시(西施), 폐월수화(閉月羞花:그 미모로 달이 숨어버리고, 꽃이 부끄러워 하다)로 유명하고 삼국지의 여포(呂布)를 유혹하는 초선(貂蟬), 당 현종(唐 賢宗) 시절의 절세미녀 양귀비(楊貴妃)와 왕소군(王昭君)을 꼽는다.
왕소군은 한나라의 원제(元帝) 대의 궁녀로 절세의 미녀였는데 원제는 후궁들이 많아 일일이얼굴을 볼 수 없어서, 모연수(毛延壽)라는 궁중화가로 하여금 후궁들의 초상화를 그려 바치도록 하여 마음에 드는 후궁을 낙점하였다
따라서 후궁들은 뇌물을 주면서 잘 그려주도고 간청하였는데, 왕소군만은 뇌물을 주지않아 모연수는 그녀의 얼굴을 매우 추하게 그려 바쳤으니 황제는 왕소군을 곁에 두지 않았다
그러던 중 흉노족의 왕 호한야(胡韓耶)가 한나라의 미녀로 왕비를 삼기를 청하자
황제는 평소 추녀로 잘못 알고 있었던 왕소군을 그에게 주기로 결정하였는데, 왕소군이 흉노로 떠나는 날 그녀를 처음 왕소군을 실제로 보게된 황제는 격노하여 모연수를 죽여 버렸다
졸지에 말도 통하지 않는 흉노의 땅으로 버림받는 왕소군을보면서 한탄하여 읊어진 시가 바로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이다
이 시는 위의 해석과 달리 해석하기도 한다
'오랑케 땅인들 어찌 화초가 없으랴만, 정 붙이지 못하는 이역 땅에서 꽃을 대하니 봄이 되어도 봄날의 설레임이 없다'는 뜻이다
그후 왕소군은 죽어 흉노의 땅에 묻혔는데, 겨울이 되어 흉노당의 풀이 모두 시들어도 왕소군의 무덤의 풀만은 사시사철 늘 푸르렀다고 하여 그 무덤을 청총(靑塚)이라고 하였다는 이야기다
금년들어 최근 며칠간의 변덕스런 날씨를 보노라면 봄은 봄이로되 봄이 아라는 생각이 들어 우리나라가 걸어 온 근대역사를 보는 것 같아 뒷 맛이 개춘치 않다.
3월부터 남녁에서 불어온 바람이 매화를 꽃피우고, 산수요, 개나리 흐들어 겨우잠 깨우더니 어렵사리 몸살하며 속살 드러낸 벚곷을 여지없이 망쳐 버렸다.
(아파트 뜰안의 철쭉)
지난 한 주 동안 겨울이 있었고, 봄이 있었고, 천둥과 번갯불이 휘날리던 여름이 있었다.
그리고 영동지방의 눈 바람이 전주가지 불어와 봄 옷 입고 뽐내던 봄꽃들의 축제를 맥없이 누너뜨리는 겨울이 또 있었다
2006년의 봄은 봄이뢰되 봄이 아니었다.
엇 그제의 곡우 절후가 조상님들이 그냥 만든 것이 아닐 것이고 계절을 예고하고 인간들에게 기본 욕구인 먹을 것을 준비시킨다
봄은 봄다워야 아름답다.
이미 꽃 피우고 잎 피운 나무들이 부끄럽지 않게 말이다.
2006, 4월 하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