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언부언

애마(愛馬)타고 서울 가던 날

goldenfiber 2006. 6. 19. 11:01

우리는 2003년 개봉된 강우석감독의 영화'실미도' 를 보고 당시 어두웠던 군대조직과 문화을 알 수 있었다.

이 영화는 개봉 58일만에 한국영화사상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33년간 베일에 가려져 있던 실미도의 역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1968년 1.21 북한의 무장게릴라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 세검정까지 침투했던 사건을

보복하기 위해 중앙정보부가 창설한 북파부대원 31명이 3년 4개월동안 지옥훈련을 받고

자신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기위해 1971년 8월 23일 실미도를 탈출하여 버스를 빼았아

서울로 진입 하다가 자폭한 사건이 있었다

(영화에서 출동한 군대와 대치하다가 자폭하는 장면을 사실 부안군 계화면 소재지에서 촬영하였다. 지금도 계화도 소재지에 가면 그때의 자취를 조금은 찾아 볼 수 있다)

 

 

난생처음 촌놈이 서울에 간 것이 바로 1971년 8월 22일, 그 사건 하루 전 날이다

 

 

촌놈이 머리에 털나고 처음으로 서울 땅을 밟던 다음 날 서울은 공포의 도가니에 휩쌓였다

둘째 고모님이 서울에 사시는 터라 모처럼 막내조카 서울 구경시켜 주려고 데리고 갔던 그 시기에 국가적으로 역사적 사건이 같이 있었던 것이다.

 

국민학교 5학년이었던 시골촌놈은 고모님 댁에서 서울 시내로 나가다가 무장군인을 실은 군용

트럭들이 시내를 가로지르고 차량을 통제하던 당시 정확한 상황은 몰랐지만  술렁술렁 무장공비가 나타났다는 뒤숭숭한 입소문으로 분위기 한 가운데 있었던 것 만도 난생처음의 서울구경이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당시야 뭔지 모르고 그냥 불안한 생각만 가지고 고모님 따라 덕분에 창경원이고, 남산식물원, 남산 야외 음악당을 둘러 보았다.

세상에 이리 좋은 곳이 있을까

당시 어린 마음에 문화적 충돌로 촌놈의 정신적 충격은 컸다.

 

한참 세월이 흐른 후에야 그 사건이 북한에서 넘어 온 무장공비가 아니고 우리나라 군인이었다는 것을 알았고, 혹독한 훈련과 자신들의 신분이 보장되지 않는 사실을 알고서 자신들의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려는 그들의 시도임이 알리어 졌다

 

그후에 중학교 때에는 서울로 수학 여행을 갔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수없이 서울을 오 갔다.

 

그렇다고 해서 서울의 곳곳을 둘러보는 기회가 많았던 것은 아니고 주로 공무로 서울을 다녔기 때문에 단순히 횟수로 한다면 그래도 촌놈치고 나만치 다닌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35년의 세월

자식놈 덕분에 난생처음 애마(산타페)를 몰고 서울을 가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동안 서울을 가게되면 주로 고속버스를 이용하거나 열차를 이용하고

그 다음에는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에 편승하여 주로 서울 일을 봐 왔다

 

그러던 것이 애마를 구했던 10년동안도 한번도 직접 몰고 상경하지는 않았으니

촌놈은 촌놈이 분명하다

 

기록으로 보면

태어 난지 47년만에 차를 몰고 서울을 찾아 갔으며

난생 처음으로 서울 상경 35년만에 애마타고 상경하고

애마를 구한지 10년만에 서울 구경 갔으니

가히 역사적 기록임에 틀림이 없다

 

아무래도 시골에서 면허 딴 사람들은 직접 서울까지 차를 몰고 간다는 것에 많은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촌놈 역시 마찬가지여서 차를 몰고 서울에 갈 일들이 그간에 여러번 있었지만

좀 불편하더라도 항상 대중교통을 이용하던지

다른 사람의 차편에 언쳐 서울을 다니곤 했으니 말이다

 

2006년 6월 17일 토요일

 

개인적으로는 역사적 사건이다

아침 8시 반에 출발한 촌놈은 잠시 중간에 사무실에 들러 일을 보고 서울로 향했다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유달리 밀렸다

천안삼거리 휴게소에서부터 밀리기 시작한 차량의 행렬은 서초 IC까지...

 

그 이후론  자의에 의한 운전은 없었다

'네비게이션'이라는 문명의 이기에 몸을 맡기고 거기서 불러 주는 대로 따라 할 수 밖에

없었다

목표는 마포구 상수동, 홍익대학교 부근이다

그동안 남의 차 이용할때는 지리도 그리 잘 알더니만 정작 핸들을 막상 잡고 나서는

아무것도 자신이 없었다

 

서울도로는 어디 전주같은 가

한번 잘못 들면 몇키로를 돌아야  제자리에 올 수 있는 도로 여건이 촌놈의 운전을 그렇게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전주야 길 잘못 들면 몇 블럭 하서 U턴하면 그만이지만 서울은 결코 촌놈의 운전 솜씨를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네비게이션'이라는 물건이 우리 일행을 촌놈이 찾고자 하는 골목까지

안내해주고 '상황을 종료'한다는 멘트가 있어  퍽이나 감사했다.

5시간의 과로

 

 

그리고

이내 일을 마치고 출발지에서 떠난 시각이 5시 반

짐작으로 역순 운행을 시도했던 촌놈에게 서울 길은 그리 호락하지 않았다

결국은 한바퀴 돌아서 제자리 까지 오는 1시간 소비...

 

다시 문명의 이기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신세가 되었다.

주말의 서울 교통체증을 실감이라도 하듯 두어 시간의 몸살을 앓고서야 서울 톨케이트에

도착할 수 있었으니 난생 처음으로 애마타고 서울 간 촌놈 겁주기 딱 알맞았다

 

통상 같은 차량에 타고 가면서도

직접 운전하는 사람과 옆에 탄 사람과의 질눈(길 눈) 차이는 엄청나다

한번 다녀 온 길을 직접운전하는 사람은 기억하지만, 옆에 탄  사람은 역시 새판잽이다

 

긴장한 탓인지, 가고 오고 하는 길이 너무 적체가 심해서 인지 온 몸이 쑤신다

오고 가고 무려 10시간을 운전했으니 그럴수도  있겠다.

 

다음에 애마타고 서울가면 이번 같지는 않겠지.........

 

06.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