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부 관아
칠사당
동헌
좌로부터 의운루, 별당, 동헌
임영관 삼문
임영관 중대청
전대청과 서헌, 동대청
강릉 관아는 고려말에 설치되어 조선말기에 폐지된 강을 대도호부의 행정관청이 있던 곳이다
여느 관청주변 성지가 그렇듯 이곳 강릉관아도 당시 정부의 천주교 탄압정책에 따라 수많은 신자들이 잡혀오고
단순 믿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름도 없이 무참하게 수많은 순교자들이 스러져 간 마음아픈 곳이다
강릉 관아는 크게 강릉읍성과 동헌 영역 및 객사 영역으로 구분되고 동헌영역에 칠사당도 함께하고 있다
이 곳은 강릉부의 행정주심 치소로 고려말부터 조선시대까지 수차례의 중수과정을 거쳐 일제 강점기까지 유지되어 왔으나
일제에 의해 대부분 건물이 소실되고 강릉 임영관 삼문과 칠사당만 남아 있다가 2006년 임영관 복원에 이어
관아의 아문, 동헌, 별당, 의운루들이 복원되었다
강원도 지방 특히, 춘천교구 내 영동 지역의 순교 기록을 찾기란 문헌상 애로가 많으며
강릉 지역의 순교자로 교회 공식 문헌에 나타나고 있는 이는 '치명일기'에 기록되어 있는 심 스테파노 한명 뿐이다
하지만 교회 전통 사학자들의 연구 결과와 지금까지 구전으로 전해 오는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병인박해 때 많은
신자들이 강릉관아 칠사당과 임영관에서 심문을 받고 순교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강원도 유형 문화재 제7호인 칠사당은 대도호 부윤이 주재하던 조선시대 관공서로 호적, 농사, 병무, 교육, 세금, 재판, 풍속에 관한
일곱가지 정사를 베풀던 곳이나
교회 사학자들은 여러 순교자 증언록을 인용, 이 곳 칠사당에서 병인박해 때 심문도 없이 목이 잘리는 참수형으로 많은 교구들이 순교했다고 말하고 있다
칠사당 동헌 한가운데에는 체포된 천주교인들을 묶어 갖은 고문을 하며 심문했던 것으로 전하는 고목이 아직도 푸르름을 간직한채 남아 있다
또한 칠사당과 이웃한 임영관에서도 박해 시대 천주교인들이 무수한 고문에 못 이겨 신음하던 처절한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 곳에서 길 건너 바라다 보이는 임당동 성당은 말없이 먼저 스러져 간 순교자들모습을 묵묵히 비켜 보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 많은 교우들이 이 곳 강릉관아 터에서 사라져 갔지만 정확한 고증없이 교회사로만 연구하고 있고
복원도 강릉관아 현장 어느 곳에도 이 땅에 천주를 지키다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기록은 단 한자도 찾을 수없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강릉관아를 찾아 이 곳 저 곳을 다둘러 보면서 한가닥 순교자들의 자취를 찾아 볼까한 필자의 노력은 작은 욕심에 불과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밖에 없었다
다시금 증언과 구전, 교회사등을 더 연구해서 이 곳에 작은 징표라도 남기는 것이 그분들이 지켜온 이 땅의 천주를 누리고 사는 우리의 과제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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