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소쇄원(瀟灑園)

goldenfiber 2015. 3. 31. 22:12

 

광풍각

 

오곡문

소쇄처사양공지려

 

 

제월당,

 

제월당 뒷모습

 

 

 

 

 

소쇄원

 

소쇄원은 조선중기 양산보(1503~1557)가 조성한 대표적인 민간 별서 정원이다.

양산보는 스승인 조광조가 기묘사화(1519)로 능주로 유배되고 사사되자 세속의 뜻을 버리고 고향인 창암촌에 소쇄원을 조성하였다.

소쇄원의 조성연대를 정확히 말하기는 어려우나 양산보가 낙향한 1519년 이후부터 조성되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송순, 김인후, 등의 도움을 받고 그의 아들인 자징과 손자 천운 등 3대에 걸쳐 완성되면서 후손들의 노력에 의해 오늘에 이르렀다.

 

소쇄원은 조선중기 호남 사림문화를 이끈 인물의 교류처 역할을 하였다.

면암 송순, 석천 임억령, 하서 김인후, 사촌 김윤제, 제봉 고경명, 송강 정철 등이 드나들면서 정치, 학문 사상 등을 논하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소쇄원은 크게 내원과 외원으로 구분하는데 흔히 말하는 소쇄원은 내원을 말한다.

소쇄(瀟灑)는 '맑고 깨끗하다'라는 뜻으로 당시 양산보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양산보는 송나라의 명필 황정견이 주무숙의 사람됨을 광풍제월(光風霽月)에 비유한 것에 유래하여

대표적 건물을 각각 제월당(霽月堂)과 광풍각(光風閣)으로 이름지었다.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제월당은 주인이 거처하면서 학문에 몰두하는 공간이며

'비 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의광풍각은 손님을 위한 사랑방 역할을 하였다.

하서 김인후는 1548년 소쇄원사십팔영을 지어 앵양단에 걸었나 지금은 제월당에 걸려 있으며

1755년 소쇄원을 그린 목판인 소쇄원도가 남아있어 당시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제월당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썼다.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미공원  (0) 2015.04.06
창평 슬로시티  (0) 2015.04.01
죽녹원(竹綠苑)  (0) 2015.03.29
낙안읍성  (0) 2015.03.20
변산 마실길  (0) 2015.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