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대구 근대로의 여행1

goldenfiber 2015. 5. 10. 22:28

 

 

 

 

 

서상돈1850~1913)은 천주교 순교자 집안에서 태어나 맨손으로 시작해 큰 부자가 된 대구 출신의 민족자산가이다

어렸을 때부터 상점의 심부름꾼으로 일하며 생계를 해결해야만 했던 서상돈은 18세 무렵 당시 대구 천주교회 원로회장 서용서(김수환 추기경의 외할아버지)등

천주교 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보부상을 시작하였다.

1885년 로베르(김보록) 신부가 경상도 신나무골 교우촌(칠곡군 지천면 연화동)으로 옮겨 오면서 천주교회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1897년 계산동 성당 건축 등에 기부와 후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1899년 계산동 성당 부속건물에 한문서당인 해성재를 설립하여 1908년 성립학교로 개교하였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발의하고 단연회를 설립하는 등 국민운동을 전개하였다.

 

 

 

민족저항 시인 이상화는

1901년 대구시 중구 서문로에서 태어났으며 1915년 한문 수학 후 상경, 중앙학교에 입학하고 1918년 3년 수료후 강원도 일대를 방랑

1922년 백조동인으로 참여, 창간호에 시'말세의 희탄''단조''가을의 풍경'등을 발표,  일본으로 건너가 아테네 프랑세에 입학

1923년 9월에 일어난 관동대지진에서 본 일본인의 조선인 학살에 분노 이듬해 3월 귀국, 가희동 취운정에 머물면서 시'나의 침실로' 발표

1926년 대표작'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발표

1928년 독립운동자금 마련을 위한 'ㄱ당사건'에 연루되어 개구경찰서에 구금

1930년 '대구 행진곡'을 발표

1935년 시 '역천', '나는 해를 먹다' 발표

1936년 백씨 이상정 장군을 만나러 중국을 다녀 온 후 심한 고초

1939년 종로에서 대구 중구 계산동으로 이사, 1941년 시'서러운 해조'를 발표

1943년 숙환으로 운명

 

 

 

 

 

 

 

대구 근대로의 여행

 

구 한말부터 일제시대까지 개화기에 대구에 형성된 각종 문화 들

일제의 탄압에 앞장 서 민족들을 일깨운 선각자들이 있어 광복을 우리는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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