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바위 성지(성당)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에 위치한 성당으로 성당의 역사 뿐만 아니라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가 되어 조국에 입국하여 첫발을 디딘 축복의 땅이기도하다.
1836년 12월, 15세의 어린나이로 조국을 떠나 마카오에서 사제수업을 마친 그는 1844년 12월 부제품을 받고
이듬해인 1845년 1월 천신만고 끝에 의주변문의 수구문을 통해 고국땅을 밟는다.
그리고 그해 4월 선교사를 모셔올 목선을 구입하여 11명의 교우들과 함께 중국으로 들어가 그해 8월 17일 상해 금가향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는다.
김대건은 8월 31일 11명의 교우와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신부와 함께 타고 갔던 목선으로 귀국길에 올랐으나
풍랑으로 생사고비를 수없 이 넘긴 끝에 1945년 10월 12일 밤 8시경 강경에서 좀 떨어진 '황산포 나바위 화산 언저리'에 닻을 내려
첫 방인 신부로 나바위에 발을 디디면서 나바위 성지와 김대건 신부는 연을 맺게 된다.
이곳 나 바위 성당은 1897년 본당을 설립한 베르모렐(장약슬 요셉)신부가 1906년 신축공사를 중국인부를 동원하여 시작하여 1907년 완공하였다
설계는 명동성당과 전동성당을 설계한 프와네루신부가 하고 건축 양식은 한옥의 전통양식을 택했는데
그 뒤 1916~17년에 흙벽은 양식벽으로, 용마루 부분 종탑은 헐고 성당입구에 벽돌조를 붙여 고딕식 종탑을 세웠다.
현재 이곳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318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당초 이곳은 퇴마루가 있어 주로 예비신자들이 미사시 사용해 왔으나 회랑으로 바꾸었고
다시 1922년 회랑 밑부분을 석조로 개조하여 오늘가지 보존되고 있다
특히, 성당내부 가운데에 기둥이 있는데 이는 전통 관습에 따라 남.녀석을 구분하기위해 칸막이를 설치하는데 사용했다
스테인드 그라스가 한지로 채색한 것이 독특하다
윗 창문은 팔각형을 하고 있는데 이는 성당 건축당시 중국인 기술자들이 중국식 양식을 고집하여 설치한 것으로 알려 졌다
지금도 마루바닦을 하고 있어 고전미가 넘치고 있다.
십자가의 길
나바위 위에는 베르모넬 신부가 1912년부터 매년 6월이면 이곳에서 피정을 하였던 대구교구장 드망즈 주교를 위해 지은 망금정(望錦亭)이 있다
너럭바위 위에는 1955년 김대건 신부 시복 30주년을 맞아 화강석으로 만든 김대건신부 순교기념비가 있다
초대 본당 신부 기념비, 베르모렐 신부는 본당 설립과 성당 건립, 애국계몽운동 등 22년동안 나바위 본당의 기초를 다졌다.
나바위 본당 2대 소세덕 신부의 묘, 본인의 유지에 따라 이 곳에 유택을 마련하였다.
나바위는 나암의 우리말 표기로 광장 같은 너럭바위가 화산(華山) 정상에서 강가를 따라 남서쪽으로 널려있어 생긴 마을이름이다.
화산이란 지명은 조선조 우암 송시열이 근접한 황산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이곳 나바위가 아름답다고 해서 화산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전한다
순례를 마치고 나오면서 느낌은 이 곳 나바위 성당은 분위기상 공주 공세리 성당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 가운데 우득 선 작은 야산이 그렇고, 가까운 곳에 포구가 위치했다는 것도 그렇고, 건축 양식과 성당이 들어선 방향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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