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내포 교우촌 신리 성지

goldenfiber 2009. 6. 13. 23:01

 

 충남 당진군 합덕읍 신리에 위치한 신리 성지

이 곳 신리성지는 박해시대에 어려움을 이겨내고 한국교회의 맥을 이어온 교우촌이 형성된 곳이자

솔뫼성지, 공주 황새바위 성지, 그리고 갈매곳 성지와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이 곳은 1866년 병인박해 때 공주 관아에서 배교를 거부하고 자신의 살점을 물어 뜯어 신앙을 증거한 손자선 성인의 생가이자

다블뤼 안주교가 1945년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함께 우리나라 땅을 밟은 이후 주교의 주교관이자 조선 교구청이었다.

또한 안주교가 이 곳을 거점으로 주로 내포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면서 한국 천주교사와 조선 순교사의 편찬 작업을 해 왔던 곳이다

 

 

본디'천주강생 1815년'에 지어진 생가는 박해시대 이래로 몇차례 소유주가 바뀌었고 그 구조 또한 개조를 거듭해 오다가

1964년부터는 강당의 형태로 개축되어 공소로 사용되었으나 본당 중심의 사목이 강화되면서 방치되기에 이른다.

이후 성지개발이 본격화되고 한국교회사연구소로 부터 생가의 옛사진이 발견됨에 따라 원형 복원을 위한 본격적인 조사가 전문가들에 의해 진행되었고

2004년 마침내 손 성인의 생가이자 안주교계서 사시던 주교관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오른쪽 성당과 순례자 휴게소)

 

다블뤼 안주교는 조선에 머무르는 21년 동안 복음활동과 함께 조선의 천주교사와 순교를 서방에 알려 오늘날 한국 천주교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베르뇌 주교가 순교하자 1866년 3월 7일 제5대 조선교구장으로 임명되었으나 4일만인 3월 11일 그의 복사 였던 황석두 루가와 함께 손자선 성인의

숙부였던 손치호(니콜리오)회장 집이 있는 거더리에서 체포되었고, 이어서 오메트르 신부와 위앵 민 신부가 체포되었다.

 

다블뤼 주교의 업적은 어려운 시기에 한국에 복음을 전파한 공적과 함께 저 유명한 다블뤼 주교의 '비망기' 7권이 이곳에서 작성되었으며 이것은 곧 1862년 10월 홍콩 리부아 신부를 통해서 파리로 전해져 달레의 '한국 천주교사' 두권을 나오게 한 것이다

거더리는 현재 행정구역상 예산군으로 되어 있으나 당시는 신리와 거더리는 같은 마을로써 박해시대 때 이를 극복하던 교우촌이 형성되었던 곳이다

거더리에서 체포된 다블뤼 주교 일행은 서울로 압송되어 몇 차례의 신문을 받고 군문 효수형으로 판결을 받아 갈매못에서 최후를 마치게 되는데

이로써 조선 교구 4대 교구장이었던 베르뇌신부를 도와 9년동안 부주교로서 그리고 주교의 순교후 조선5대 주교가 된지 24일만인 3월 30일에 순교한다.

 

그후 이 곳은 교우들의 입을 통해서 성 손자선이 태어난 곳이자 다블뤼 주교의 거처라고 알려져 1927년 합덕본당 페랭신부가 교우들의 협조를 얻어 이를 매입하고

순교 기념비를 건립하여 축성식을 갖게 되었으며, 당시 초가 지붕이었던 주교관을 해방후 양철지붕으로 개량했다가 지금은 다시 초가 지붕으로 복원개량되었다

 

다블뤼 주교는 한국에서의 그 업적을 인정 받아 1968년 10월 6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에는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여의도에서 시성되었다.

2009년 6월 성당 외벽에 예수님을 모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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