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배마실
배마실은 본래 뱀이 많이 나온다해서 뱀마을, 뱀마실로 불리다가 골짜기에 있는 이곳을 골짜기 뱀마실이 골배마실로 불리어진다
충남 당진의 솔뫼가 김 대건 안드레아신부가 태어난 곳이라면
이 곳 골배마실은 김대건 신부가 소년 시절을 보내 제2의 고향이자, 이웃 은이공소에서 세례를 받으면서 믿음의 싹이 트이어
사제가 되기 위해 마카오로 유학을 떠날 때까지 몸과 마음을 준비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본디 이곳은 수리산(안양시 안양 3동), 이웃 은이 공소와 함께 경기도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교우촌이었으며
수리산에서 최양업 신부가 신학생으로 선정되었다면 골배마실에서 살던 김대건도 은이공소에서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수리산이나 골배마실 골짜기 모두 땅이 척박하여 신자들 대부분이 화전이나 담배 농사를 지어 생활을 꾸려 가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오직 믿음 하나만으로 살아가며 언제나 새 신자들을 환영하였고, 그들의 생활 터전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으며
신부 방문이 있을 때면 여럿이 모은 공소전을 바쳐 교회 사업을 도왔고, 일상생활에서 기도하며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였다
1821년 8월 21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솔뫼에서 태어난 김대건은 선대부터 믿음이 싹 트기 시작했는데
증조부 김진후가 면천군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 내포의 사도로 불리는 이존창으로 부터 복음을 전해듣고 신앙에 전념하게 되었고
(1791년 진산사건으로 옥살이, 1801년 신유박해 때 유배, 1805년 다시 붙잡혀 옥고 끝에 순교)
김진후의 둘째 아들이자 김신부의 조부인 김택현이 가세가 기울고 더 이상 신앙을 지키기가 어려워지자 가족들을 이끌고
이 곳 경기도 용인 땅 산골짜기로 생활 터전을 옮기게 된다
김택현 일가는 충청도 솔뫼를 떠나 서울 청파동을 거쳐 용인 땅에 정착하게 되는데 그 때가 대략 1827년 경
당시 그의 가족이 정착하여 교우촌을 일군 곳은 골배마실이 아니라 남쪽 산너머 한덕골(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묵4리),
한편 한덕골에는 최경환(최양업신부의 부친)의 형 최영겸도 1832년 무렵에 이곳에 이주해 왔으며
1839년 이후에는 최양업 신부의 넷째 아우인 최신정이 이 집에서 성장하였다
김제준은 그 후 가족들을 이끌고 1835년 무렵에 한덕골에서 골배마실로 이주하게 되는데
골배마실은 한덕골에서 북쪽으로 뻗은 산와 어은이 고개를 넘으면 곧바로 갈 수 있었다
선대의 신앙을 어어받은 김 신부의 부친 김제준 이나시오 성인은 모방 신부로부터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고 회장에 임명되어 전교에 힘쓰면서
자신의 아들을 사제의 길로 인도했으며 1839년 기해박해로 체포돼 그 해 9월 26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 한다
1836년 초 모방신부는 김제준의 방문을 받고, 7월에 골배마실을 들러 김대건을 신학생으로 선발한 뒤 은이 공소에서 세례를 준다.
소년 김대건은 그해 12월 사제의 길을 위해 최양업과 함께 고국을 떠나게 되는데
조국을 떠난 지 8년만인 귀국도중 1844년 12월 부제품을 받고 이듬해인 1845년 8월 17일 중국의 김가향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는다
그는 그해 8월 31일 교구장 페레올(고)주교와 다불뤼(안)신부를 동반하고 귀국 길에 올라 10월12일 강경 황산포에 도착 나바위 성당에 잠시 기거 한뒤
서울로 올라가 1845년 11월 드디어 꿈에 그리던 이 곳 골배마실을 방문, 어머니 고 우르술라와 상봉하여 모자의 정을 나눈다
김 신부는 이 곳 골배마실에서 기거하면서 이웃 은이공소에서 6개월 동안 사목 생활을 하였고
선교사 입국에 따른 해로 개척을 위해 1846년 5월 황해도 앞 바다로 이동하였지만 6월 5일 순위도에서 관군에게 체포, 서울로 압송되어
그해 9월 16일 한강 새남터에서 대역죄로 다스러져 군문효수형에 처해 순교한다
이로써 1814년 증조부 김진후로부터 시작된 김 대건 신부의 믿음은 당시 조정의 대대적인 박해정책에 의해서 4대가 순교되는 신앙의 명가가 되었다
이로써 이동면 한덕골과 내사면 골배마실과 은이 공소는 일찍부터 교우촌으로 일구어진 곳이며
김대건과 최양업 두 신부의 집안이 신앙의 싹이 동아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재의 골배마실은 아무런 흔적도 없이 양지 리조트의 한 구석 응달에 석상과 제대, 초가집과 어머니 고씨의 모습을 새긴 부조,
김신부의 생가터를 알리는 갓 비만이 성지를 찾는 순례객들을 쓸쓸하게 맞이하고 있다
한덕골에 김 신부의 조부인 김택현과 숙부인 김제철의 무덤, 최신부의 중백부인 최영겸의 무덤이 있고
1839년 체포되어 순교한 김 신부의 부친 김제준 성인의 무덤은 골배마실 어딘가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무덤을 지금은 찾지 못해 아쉬움을 더하고 있다
골배마실 성지를 가는 길은
미리내에서 나와 이천 방면 국도 42번 도로로 가다가 양지 사거리에서 양지 리조트 쪽으로 접어들어 양지리조트 정문을 통과
직진하여 주차장을 지나치면 우측으로 안내문이 있다
'성지순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의 연초록을 따라가는 아름다운 순례길 (0) | 2010.04.13 |
---|---|
윤봉문 요셉 묘 (0) | 2010.03.02 |
김대건신부의 첫 사목지 은이공소 (0) | 2010.01.24 |
김대건신부가 잠들어 있는 미리내 성지 (0) | 2010.01.24 |
115년의 역사, 되재성당과 고산성당 (0) | 2009.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