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외)

리스본(포르투갈)

goldenfiber 2012. 3. 31. 18:55

 

(리스본 시가지, 뒤로 테주 강이 보인다)

 시내 곳곳에 그려진 낙서 겸 광고  

(대서양 횡단 비행기)

1922년 이 곳 리스본에서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까지 위 아래된 날개를 가진 이 비행기로 대서양을 횡단 했단다.

(멀리 4.25 다리와 예수상이 보인다)

 (벨렘 탑 )

이 탑은 당초 물속에 세워졌으나 테주강의 흐름이 바뀜에 따라 육지로 드러났다.

1515~1519년에 건설된 이 탑은 하얀 나비가 물위에 앚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마누엘 양식의 건축물로 3층구조이다

아름다운 테라스가 있는 3층은 옛날 왕족의 거실로 이용되었으며,

2층은 포대로 항해의 안전을 수호하는 '벨렘의 마리아 상'이 서 있다

1층은 스페인 지배하던 시대부터 19세기 초까지 정치범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스페인 지배에 저항하던 독립운동가, 나풀레옹 군에 반항하던 애국자, 그리고 진보주의자들이

만조 때에는 물이 들어오고, 간조 때는 물이 빠지는 이 감옥에서 고통스러운 옥살이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발견 기념 비 )

 제로니무스 수도원 앞 임페리오 광장을 건너 테주 강변에 위치한 본 기념비는

신천지 발견을 한 '바스코 다 가마'가 항해를 떠난 자리에 세워졌으며

1960년 포르투갈의 엔리케 항해왕 사후 500주년을 기념하기위해 세워졌으며 높이는 53m이다.

 

항해중인 범선 모양을 하고 있는 이 기념비는 맨 앞 뱃머리에 '엔리케 항해왕'이 있고

그 뒤에는 신천지 발견에 공이 많은 모험가, 천문학자, 선교사등 많은 인물 조각상이 줄지어 있다.

엘리베이터로 옥상에 오르면 테주강을 비롯하여 대서양 및 벨렘지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임페리얼 광장)

 (멀리 코메르시우 광장이 보인다. 이곳 광장에서 개선문을 지나 로시오 광장을 잇는 쇼핑가가 리스본에서 가장 번화가이다)

 (로시오  광장 - 이 곳에서 포르투갈의 각종 행사가 열린다 )

 (리스본 시내의 아름다운 주택 채색, 획일화 되었다는 지적도 있지만 우리도 주택 경관에 이제 힘을 쏫을 시기이다

멀리 산 정상에 상 조르주 성이 보인다)

 (에두아르도 7세 공원 )

1755년 대 지진으로 폐허가 된 리스본의 재건에 도움을 준 영국,

1902년 영국의 에두아르도(에드워드) 7세의 리스본 빙문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공원이다.

기하학 무늬의 화단이 아름다운 프랑스식 정원으로 리스본 시가지가 한 눈에 보인다.

 (포르투갈 전통음식인 '코지두 아 포르투게자' 닭고기와 감사 야채 등으로 조리되고 있다) 

 (현재도 운행중인 전차, 좁은 길을 자유자재로 달리는 전차는 대중교통 역할과 관광객들에게 또다른 체험과 볼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4.25 다리를 건너자 좌측으로 예수 성심상, 기단 높이 75m, 예수상 28m로 테주 강과 리스본 시내를  향해 우뚝 서 있다  ) 

 

( 포르투갈 남쪽으로 향하는 길, 방목되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양들이 평화롭게 보인다)

 

리스본,

포르투갈의 수도이자 포르투갈어로는 리스보아(Lisboa)라고 한다

테주강의 삼각 하구 우안에 위치한 도시로 포르투갈의 최대 도시이다

일찍이 페니키아,그리스,카르타고 시대부터 항구도시로 알려져 왔으며 BC205년에는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갔다가

714년 이래 다시 이슬람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리사보나로 불리다가 1147년 알폰소1세에 의해 해방되었다.

1755년 지진과 그로 인한 화재, 해일로 시가지의 2/3를 잃어 많은 유적이 파괴되었으나 그 이후 도시 재건에 나섰다

리스본에는 가 볼만한 곳이 많이 있는데

벨렘지구의 벨렘 탑과 제로리모스 수도원, 발견 기념비와 함께 로시오 광장에서 코메르시우 광장으로 이어지는 고급 상가들,

또한 리스본의 재건에 일조한 영국 에두아르도 7세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에두아르도 7세 공원이 있다  

4.25 다리(본래 살리자르 다리)를 건너 테주 강을 횡단하면 남으로 내려갈 수있다.

 

파두(Fado)

파두의 고향 포르투갈, 그들은 수 많은 외침에 새로운 땅 식민지 개척을 위해 대서양에 몸을 던져야 했다

드리마 '창춘의 덫'과 ' 사랑과 야망' 삽입곡으로  귀에 익은 파두, '어두운 운명, 검은 돛배'등등

그러나 그동안 그들의 사연에는 크게 관심없이 단순 그라마상의 여주인공(차화연 등) 의 애간장을 끊는 배경으로만 우리는 인식해 왔다.

우리의 트롯과 같은 파두는 푸르투갈의 다양한 문화적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포르투갈은 BC 8세기경 켈트인의 정착 이래로 수많은 외세의 침입과 오랜 세월동안(약 428년간)의 무어인(이슬람)의 지배를 받아오며

이들의 문화에 아프르카, 아랍적, 그리고 이베리아 고유의 로망스의 전통이 혼합된 다양한 문화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포르투갈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잇는 1415~1580년을 거치며 많은 식민지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바다를 향해서 나가야 했고

포르투갈의 민족대중음악 Fado는 그들의 삶이 될 수 밖에 없었다

 Fado의 유래는 아프리카 노예들에 의해 브라질로 전해진 음악이 18세기 선원들에 의해 포르투갈에 전래되었고

다시 이태리의 오페라 멜로디와 결합되어 만들어졌다고 소개되고 있다

따라서 본래 Fado는 항구마을에서 선원들의 외로움과 향수를 절절이 담고 있는 노래말이 주종이었지만  

지금은 포르투갈인의 한과 설움을 대변하는 대중적인 음악으로 정착하였다.

 

Fadista(Fado를 부르는 가수)들은 대부분 검은 가운을 입고 노래를 부르는데 그 이유는

백작신분의 귀족 Vimisio와 사랑에 빠져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Maria라는 Fadista가 26세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뜨자

이를 애도하는 모든 Fado가수들이 그녀의 명복을 빌고자 검은 가운을 입고 노래했던 것이 기원이 되어

오늘날도 Fadista의 전통복장이 되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Fadista는 아말리아 로드리게스, 베빈다, 미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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