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리 성지는 한국 천주교의 두번째 사제였던 최양업 신부가 선교활동으로 지친 몸과 장티푸스 합병증으로 선종한 곳이다
일명 '새재'라고 하는 조령은 예로부터 영남 지방에서 서울로 가는 통로이며 군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요새였다
이렇게 이 지방이 충북과 경계를 이루는 영남의 관문이기에 서울로 과거나 일을 보러가는 이들은 물론 최양업 신부와 경상북도의 사도인 칼레 신부 등 선교사들과 교우들이 몰래 관문 옆 수구문(水口門)을 통해서 충청도와 경상도를 넘나들며 전교 활동과 피난 길로 이용했던 유서 깊은 곳이다.
최양업 토마스(1821-1861년) 신부는 1821년 3월 충북 청양 다락골 인근에 있는 새터에서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순교자 이성례 마리아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1836년 15새 때 모방(1803-1839) 신부에 의해 한국의 첫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최방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길에 올랐다
부제 때인 1846년에 한국의 첫 사제이자 동료인 김대건 신부의 순교 소식을 듣게 되었고,
1849년 4월 마침내 상해 서가회 성당에서 강남 대목구장으로 있던 마레스카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고 한국의 두번째 사제가 된다
1849년 12월 면문을 떠나 어렵게 조선으로 입국한 최양업 신부는 휴식을 취할 겨를도 없이 충청도 등 5개 도의 산간벽지를 찾아 다니며 각처에 숨어 있는 신자들을 순방하고 성사를 집전하였다.
진천 배티를 사목중심으로 삼은 그의 열정적인 사목 활동은 11년 6개월 동안 꾸준히 계속되었다.
1860년의 경신박해 때 최양업 신부는 몇명의 신자들과 함께 경상남도 언양의 죽림굴(현 울산시 울주군 산북면 이천리)에서 3개월간 피신하다가 죽림굴에서 빠져 나온 최양업 신부는 경상도 남부지방의 사목방문을 다 마친후 배르뇌 주교에게 성무집행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새재와 이화령의 갈림길인 문경 진안리의 오리터 주막에 들었다가 식중독에 과로가 겹쳐 장티푸스 합병증으로 1861년 6월 15일에 문경의 한 작은 교우촌에서 선종하고 말았으니 당시 나이 40세였다.
최양업 신부가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배론에서 요셉 신학교의 교장으로 있던 푸르티에(1830-1866) 신부가 소식을 듣고 달려와 임종을 지키며 병자성사를 주었다.
선종후 최양업 신부의 시신은 푸르티에 신부에 의해 11월 초 배론 신학교 뒷편으로 옮겨져 안장되었고
1942년 12월 제천의 신자들이 무덤을 단장하고 그 앞에 묘비를 세웠다.
땀의 순교자인 최양업 신부는 이렇듯 당시 유일한 한국인 신부로서 11년 6개월동안 5개도를 끊임없이 넘나들여 교우촌을 방문하고 성사를 집전하며 관헌의 눈을 피하면서 이 땅의 믿음의 씨앗을 심은 분이다.
안동교구에서는 1999년 진안리 오리터에 350여평의 부지를 정리하고 2000년 5월과 11월에 대형 십자가와 제대를 설치한데 이어
조경공사를 마치고 2002년 9월 안동교구 교구장 권혁주 주교의 주례로 성지 축복식을 가졌다.
아직 성지로써 모양은 제대로 갖추지 못했지만 최양업 신부의 얼은 살아 숨쉬는 하다
다만 성지로서 아쉬움은 큰 대로 변에 있고 주차장마져 완벽치 않아 성지를 찾는 순례객들이 다소 불편과 교통사고의 위험이 있어 이에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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