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대구 계산성당

goldenfiber 2014. 5. 27. 21:20

 

 

 

 

 

 

 

 

중앙 루르드 성모상을 중심으로 좌측으로 부터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 예수, 성모 마리아, 성 요셉이 유리화로 장식되어 있다.

 

 

 

 

 

 

 

 

 

 

 

대구시 중구 계산동에 위치한 계산성당 성지,

 

계산 성당은 1885년 대구본당으로 태어나 초대 본당 주임으로 프랑스의 김보록 로베르 바오로 신부가 임명되면서 시작되었고

14년 후 모두가 염원하던 성전을 십자형 전통 한옥양식으로 팔각 기와지부을 이은 그리스식 십자형으로 성당과 교육관을 1899년 건축했으나 봉헌 축성 후 불과 40일 만인 1900년 2월 원인 모를 불이 나서 십자형 성당을 모두 태우고 말았다. 

 

십자형 성당이 이렇게 화재로 소실되자 모든 신자들은 큰 충격과 함께 허탈감에 빠졌는데 김보록 신부만은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더 큰 은혜를 주시고자 하는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화재 일주일만에 새로운 성전 건립 호소문을 발표하였다

김보록 신부는 교회 중진의 협력으로 벽돌로 내화구조와 성당 재건 계획을 세우고 손수 설계하여 현재의 계산동 성당을 1901년 착공했다

새 성당은 설계는 로베르 신부가 맡았는데 전주 전동성당 설계도를 입수하고 12사도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함석류, 창호철물 등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각종 자재는 프랑스 본국과 홍콩에다 주문한 뒤 서울 명동 성당을 건축했던 벽돌공, 석공, 목수 등 중국인 기술자를 데려와 공사를 진척하여 착공한지 1년만인 1902년 5월에 양식성당을  준공하였고 1903년 11월에 뮈텔 주교의 집전으로 성대한 축성식이 거행되었다.

또한 두개의 종탑에 설치된 두 개의 종을 축성했는데, 이 종은 기증자인 서상돈과 김절아의 세례명을 따서 지금까지 '아우크스티노'와 '젤마나'로 부르고 있다.

본 성당은 국내에서도 찾기 힘든 정면 쌍탑의 고딕성당으로 구조와 세부 상세는 로마네스크 양식에 가깝고 평면 구성은 전형적인 고딕양식이다

평면은 라틴 십자형 3량식 열주의 아케이드를 이루고, 천정에 의해 네이브와 아일의 그 획이 뚜렷이 되어 있다.

전체 성당은 화강석 기초 위에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을 쌓았는데 회색, 이형벽돌의 사용은 베트레스와 정면 출입구 및 창둘레, 그리고 내부 열주와 천정 리브에 집중하여 주조체와 장식을 겸하도록 하고 있다.

계산동 성당 증축공사 완공후인 1911년 6월 대구교구 설정으로 주교좌 본당이 되었고, 주교좌로 설정된 후 신자들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다.

또한 명도회와 청년회, 성모회가 조직되고 교육사업, 유치원도 설립되어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한편으로는 일제의 탄압으로 어려움을 겪는 시기도 있었는데 일제의 책동으로 1942년 제2대 교구장 무세 주교가 교구장직을 사임하고 인본인인 하야사까 주교를 제3대 교구장에 착좌한 일도 있었다.

신자수가 늘어나자 종각과 지붕을 배로 높히고 성당 뒷편을 물려서 남북으로 날개를 달아 증축공사를 시작하여 1918년 12월 준공하여 축성식은 1919년 5월 성대하게 거행하였다. 계산성당은 서울과 평양에 이어 세번째로 세워진 고딕 양식 성당이며 대구에 현존하는 1900년대 유일한 성당 건축물로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1년 10월에 문화공보부로부터 사적 290호로 지정되었고 1984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방문하였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제대 뒤편을 장식하고 있는 다섯개의 아치형 창문이다. 건축적 아름다움도 특출하지만 창문을 장식하고 있는 유리화와 성모상은 성당 역사를 말해주는 유산으로 가치가 있다. 중앙에 루르드 성모상을 중심으로 좌측으로 부터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 예수, 성모 마리아, 성 요셉이 유리화로 장식되어 있다.

 

한편 1885년 12월 초대 본당 주임으로 임명된 김보록 바오로 신부는 대구읍내에서 멀리 떨어진 경북 칠곡의 신나무골(지천면 연화리)에서 3년간 은신 전교하였고,

1886년 한불조약 후에 1888년 겨울 신마무골에서 대구읍내의 교회 진출을 위해서 죽전 새방골(현 대구시 서구 상리동)로 옮겨 3년간 은신 전교하면서 교우들을 방문, 성사를 주었다. 1891년 새방골에서 읍내로 들어와서 성밖 대야불 정규옥 승지댁에서 7년 동안 전교하면서 영구적인 본당을 설치할 부지를 물색하던 중 1897년 3월 김보록 신부는 현재의 계산동 성당 자리와 그 서편에 있는 동산 두 곳을 물색하였다.  그 중 당시 신자들의 의견에 따라 현 계산성당 자리에 본당을 마련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필자가 방문한 계산성당은 고풍스런 자태와 운치를 느낄 수 있었으며, 마침 한쌍의 원앙이 성스러운 성당에서 태어나고 있어서 그 의미를 더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결혼식으로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주님의 축복속에 이 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부부는 얼마나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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