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풍스런 성당 전경)
(구 사제관)
(십자가의 길)
(야외광장과 전통마을 재현)
(유물전시관)
강원도 지역에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한 것도 역시 교우들의 자발적인 전래가 기초가 되었고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풍수원 성당이다.
1888년 6월 20일 본당이 설립되어 풍수원에 세워진 현재의 성당은 1909년에 낙성식을 가진 건물로서 한국인 신부가 지은 첫 번째 성당이고, 강원도 최초의 서양식 벽돌건물이자 한국에서 일곱 번째로 지어진 고딕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다.
이런 이유로 성당 건물은 1982년 11월 3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었고, 성당보다 5년 늦은 1912년에 완공되어 현재 유물관으로 개조하여 사용하는 구 사제관 또한 2005년 4월 15일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63호로 지정되었다.
구 사제관은 원형이 잘 남겨진 벽돌조 사제관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강원도 지역에 천주교가 전래된 것은 신유박해가 일어나던 1801년경으로 보인다. 이때 서울과 경기도 용인 등지에 살던 교우들은 박해의 칼날을 피해 강원도나 충청도의 산간 지역으로 숨어들게 된다. 식솔을 이끌고 혹은 혈혈단신으로 관헌의 눈을 피해 산으로 계곡으로 피난처를 찾던 이들 중에서 신태보 베드로는 40여 명의 교우들을 이끌고 강원도 횡성군의 풍수원으로 들어선다. 이들이 바로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앙촌인 풍수원을 이룬 당사자들이다.
그들은 여기에서 교우촌을 형성하면서 강원도 최초의 본당 설립을 위한 기반을 닦는다. 바람 소리 새 소리가 유난하고 사람들의 발길이 감히 다가들지 못하는 첩첩산중에서 이들 신앙 공동체는 소박하지만 평화롭게 기도와 생활을 영위한다.
1866년 병인박해와 1871년 신미양요는 또다시 수많은 교우들을 고향에서 떠나게 만들었다. 이 때 교우들은 사방으로 연락을 취해 피난처를 찾던 신자들을 불러 모아 큰 촌락을 이루게 된다. 이렇게 같은 신앙을 가진 이들끼리 모인 공동체는 한편으로는 화전(火田)을 일구고 다른 한편으로는 옹기를 구워 생계를 유지하면서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1886년 한불 조약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된 교우들은 처음 풍수원으로 찾아든 이래 무려 80여 년 동안을 목자 없이 오로지 평신도들로만 신앙 공동체를 이룬 채 믿음을 지켜 왔던 것이다.
드디어 1888년 당시 조선 교구장이었던 뮈텔(Mutel) 민 대주교는 풍수원 본당을 설립하고 초대 주임으로 파리 외방전교회의 르 메르(Le Merre) 이(李) 신부를 임명했다. 르 메르 신부는 이로써 춘천, 화천, 양구, 홍천, 원주, 양평 등 12개 군을 관할했고 당시 신자수는 약 2,000명에 이르렀다. 아직 서양식 성당 건물을 알지 못했던 이들은 초가집 20여 칸을 성당으로 사용했었다. 그러다가 1896년 제2대 주임으로 부임한 정규하 아우구스티노 신부는 중국인 기술자들과 함께 현재의 성당을 1905년에 착공해서 1907년에 준공했고 2년 뒤인 1909년에 낙성식을 거행했다.
이 성당은 신자들이 직접 벽돌을 굽고 아름드리나무를 해 오는 등 건축 소재를 스스로 조달했는데 그 열성은 가히 오늘날 신자들이 본받을 만한 것이었다.
풍수원 성당의 교세는 크게 확장됐고 원주, 춘천, 양평, 횡성, 평창, 홍천 등 주위의 본당들은 모두 풍수원으로부터 분가되어 나온 것이다. 이처럼 강원 지역 전교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풍수원 성당에는 오랜 세월 성숙된 신앙의 유산을 배우고 묵상하고자 지금도 많은 신자들이 찾아오고 있다.
풍수원 성당에는 개인이나 가정 또는 단체로 피정을 할 수 있는 피정의 집과 1999년 5월 11일 구 사제관을 개조하여 개관한 유물관이 마련되어 있다. 유물관에는 초기 한국 교회의 역사와 신앙 선조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유물과 역대 본당 신부들이 사용했던 제의와 제구 등 다양한 역사 유물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전시되고 있다.
다행히 풍수원 성당과 횡성군은 2000년부터 강원도 유형 문화재인 성당 일대에 유현 문화관광지(바이블 파크)를 조성하는 사업을 시작하였다. 성당 일대에 조성되는 유현 문화관광지에는 성지를 방문하는 신자들을 위한 대형 광장과 진입로가 마련하여 2002년 5월 23일 십자가의 길 축복식을 가졌고 진입로 확장 공사도 이루어졌다.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사업이 지연되는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성당 뒤편에 강론광장을 조성하고 그 옆에 신앙 선조들의 일상을 볼 수 있는 농기구와 민속품, 성물과 기도서 등을 전시하는 유물전시관을 건립하여 2013년 4월 30일 축복식을 가졌다.
풍수원 성당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성체 현양 대회가 매년 열리는데, 제1회 성체 대회가 1920년에 실시된 이래 6 · 25로 빠진 3년간을 제외하고는 매년 열려 왔다. 오랜 역사만큼 30여 명이 넘는 사제를 배출한 성소의 못자리로서도 풍수원 성당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찾은 2014년 8월 현재, 교우촌 형성 당시만 해도 사람들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던 곳이지만 수많은 자료를 확보된 보기 드문 훌륭한 유물전시관에 이어 지하성당과 가마터를 복원한 역사마을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어서 이제 앞으로 풍수원성당 성지는 교우는 물론 일반 관광객이 함께 찾는 성지이자 명승지로 손 꼽일 것으로 예견되었다. 또한 단풍이 짙게 물든 가을에 다시 한번 찾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