智士 칼럼(신문)

적자생존(전라매일 20200608)

goldenfiber 2020. 6. 12. 21:08

적자생존(適者生存)

 

김철모(시인, 전북시협 정읍지역위원장)

 

모든 생물은 살기위해서 존재한다. 온갖 자연의 변화에 때로는 순응하고 때로는 거부하면서 자신을 지켜나간다. 그것이 어찌 보면 생물의 존재이유일거다. 하지만 같은 생물끼리도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로 인하여 생을 제대로 영위할 수도 없는 상황이 오기도 하고 제3의 요인이 작용해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적자생존은 본디 학문적 용어로 1864년 영국의 철학자인 허버트 스펜서가 생물학 원리”(Principle of Biology)에서 처음 사용한 인간들의 사회적 생존경쟁의 원리를 함축시킨 사회-철학 용어이다. 반면 찰스 다윈은 진화론에서 다양한 환경에서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생물체가 어느 한 특정시대에서 생존할 기회가 높다고 표현하였다. 다시 말해 종의 한 개체인 생물체의 유전 형질이 해당 생물체에 속한 환경이 가장 적합하다면 그러한 환경유전으로 인해 다음 생물체의 경우도 해당 환경에 적응하기가 점진적으로 쉬워지며 결과적으로는 그 종이 생존할 확률과 확산할 확률도 동시에 높아진다는 것이다. 다만 환경에 잘 적응하는 생물체를 표현하는 적자라는 표현과 해당시대의 강자로서 양육강식이라는 전혀 다른 개념과 혼돈하는 경우가 많은데 생물학적 적자생존은 오로지 해당시대 환경에 잘 적응하는 생물을 표현할 뿐 강자나 약자라는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여하튼 요즘 필자는 경덕재를 찾아오는 길양이 가족을 보며 또 한창 살이 오르고 있는 복숭아를 보며 적자생존을 실감하고 있다. 길양이는 비록 자기가 낳은 새끼라 하더라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뒤처지면 과감히 내쳐버린다. 필시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복숭아도 마찬가지다. 살이 오르는 다른 복숭아에 비해 영양상태가 좋지 않으면 여지없이 나무 스스로 낙과(落果)를 시킨다. 여기에 주인도 나서 너무 많이 열려있으면 냉정하게 솎아내 버린다. 그것이 그해 농사를 튼실하게 짓는 것이요 과수나무 자체의 생명을 보존하는 일이기에 그렇다. 따라서 전원생활에 비친 생물도 인간사회만큼이나 냉엄하고 참혹하기까지 하다. 인간들만이라도 제발 적자생존의 원리에서 벗어나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