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지금

연등(燃燈)

goldenfiber 2007. 5. 23. 09:18

 

내일 5. 24일은 음력으로 4월 초 8일로 2551기 부처님 오신날이다

 

각 사찰에서는 석가 탄신일 맞아 불자들과 신도가 함께 봉축법회를 갖고 부처님이 오신 그 날을 축하하고 이 세상에 부처님의 광명이 있기를 비는 행사가 있을 것이다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시내는 연등행사의 일환으로 제등행렬이 진행되곤 한다 

 

 

촌놈의 사월 초 파일에 대한 기억은 어릴적 어머니의 연등 참여에서 출발한다

 

어머니가 가지고 있었던 종교관은 

믿음 자체가 불교가 아니면서도 대대로 이어져 오는 토속종교같은 시골의 불교관으로

12. 25일 성탄절을 며칠 앞둔 날부터 교회를 찾는 촌놈의 어릴적 모습과 닮아

평상시는 둔감하다가 부처님 오신 날이면 선조 제사 날보다도 더 잘 기억하시어

절을 찾아 기여히 불을 밝혀야만 하는 고집(?)으로 어린 촌놈에게 입력되어 있다.  

 

중년까지는 도로 사정이 별로 좋지 않은 가까운 인접면에 있는 산선암으로 걸어서 줄곳 다녔고

노년에는 이 촌놈에게는 기억에도 없는 시내 모 절로 출타를 하셨다

 

연등을 켜기위해 나가시는 날이면

우선 머릴을 감고, 옷차림도 단정하게 차려 입는다

그리고 공양에 쓸 쌀을 정성스럽게 키에 까불어 보자기에 싸고

식구들 이름으로 킬 등수와 여기에 소요되는 헌금을 준비 한다

 

학교 다릴 때만해도 지닌 돈이 없기에 연등 비를 어머니가 직접 다 챙기시다가

공직을 시작한 이후부터는 이 촌놈 것은 촌놈이 챙겨 드려야 했다

혹시라도 아들이 잊기라도 할라치면

 

'야! 오늘 등 쓰로 가는데 돈좀 주어야 겠다'

'이제 니 등도 큰 놈 써야 할 것 아니냐?'

 하신다

 

전에는 등 밝히는 것에 가볍게 생각하시던 어머니는 자식이 직장 생활을 시작하자

수익자 부담의 원칙에 따라 자식이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등의 종류도 좀 나은 것으로 상향해서 달아야 한다며 부담을 요구 하셨다

 

모연금이라고 하는 이 연등 비는 그후로 늘 어머니께서 절에 가실 수 있을 만큼의 건강이 유지 되는 날가지 계속되었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된 1986년 5월 석가탄신일 연등행사에 참여한 어머니)

 

석가탄신일에 전국적으로 많은 사찰에서 등을 밝히는 이유는

캄캄한 길을 걷고 있는 중생들에게 환한 부처님의 지혜 광명을 밝히는 것을 의미 한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등불은 지혜를 상징 한다.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의 지혜가 필요하고,
수험생을 둔 자녀에게는 시험을 지혜롭게 풀어 가야 할 지혜가 필요한 것이고,
가정을 꾸리는 사람에게는 가정을 보다 윤택하고 행복하게 꾸릴 수 있는 지혜가 필요 하기에..
 
이 모연금은 각 사찰별로 모아서 사찰 자체 운영비로 쓰이기도하고 어려운 사람들에 제공하는
무료공양등 사회 사업에 주로 쓰여지게 되는데
어머니는 여기에 일찍히 동참하신 것이다
 
'자식이 가는 길을 훤하게 밝혀달라'는 메세지가 담겨 있는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이자 자식사랑의 다른 모습이었다
 
촌놈은 매년 석가탄신일이 다가오면 가까운 사찰을 찾아
연등행사를 구경하고 어머니 살아계신 때 흔적을 찾아 헤맨다
 
그 덕으로 오늘 날 촌놈이 존재하는 것을.....

 

 (1986년 5월 사진-우측은 같은동네 사신던 작고하신 상수 어머니)

 

사실 지난 이야기이지만

집 사람과 만나 인연도 불교 행사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집사람은 학생 때부터 학생불교회에 참여한 관계로

사회에 나와서도 불교에 대한 연을 잇고 있었다

 

1983년 도로 기억되는데

김제 금산면에 소재하고 있는 금산사 법회행사에 참석하러 간다며

저녁 공양드리려면 와도 좋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 갔다

 

촌놈은 사무실 동료 한명과 함께 그날 오후 금산사를 찾았고

금산사에서 저녁 공양을 마치고 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금산사에서 원평소재지 버스터미널까지

무려 4키로 남짓 되는 거리를 피곤하다는 생각도 없이 셋이서 걸으면서 수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정읍시내에 도착하여 같이 간 동료와 헤어진 후 집사람과 둘이는 터미널 근방에 있는 다방에서

영업마감 시간까지 대화를 나누었고

그  대화 도중에 그동안 감추어 놓았던

서로에 대한 감정을 털어 놓은 것이 오늘 날 같이 있게된 결과를 얻었다

 

그래서 사월 초파일이면 그때 추억이 떠오른다

지금도 모악산 자락인 금평저수지를 끼고 시골집 가는 길에 그 길을 가노라면 이슬비 맞으며 밤중에 걸었던 이야기로 화제를 일군다

 

사월 초 파일

그래서 촌놈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