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지금

두발단속

goldenfiber 2007. 5. 26. 23:49

졸업한지 29년, 오랜만에 다시 찾은 고등학교

 

제일 꿈 많고 생각도 많았던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하면

어설픈 나날이었고, 멀리 생각 못하는 시간들이었다

 

학교가 많이 변했다

건물도 변하고 운동장에 긴 그림자 드리우던 이태리 포풀러가 사라지고

학교 진입로에 항상 우리를 반겨주던 플라타너스도 자취가 없다.

유독 남은 건 단하나, 학교 정문 앞 이발관

 

5월 넷째주 토요일

지역에 사는 동기끼리 봄, 가을 철마다 정읍과 전주에서 번갈아 가면서 개최되는 동기 체육대회가

이번엔 정읍 모교에서 있는 날이다

 

정문 앞 이발관을 보면서 29년 전의 사건 아닌 사건이 생각난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 했던 가

그래서 사람들은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이고

머리를 그렇게 기르려 하는 것일까 

 

요즘 애들도 그러지만

우리가 학교를 다닐때인 1970년대 중반도 학생들이 두발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요즘도 고 1인 아들한테 주문하는 것이 머리좀 시원스럽게 깍아라 하니 말이다 

 

6.70년대 한때 장발 단속이 심했던 적이 있었지만

학교에서는 선배 규율부들의 두발단속이 정문에서 매일 이루어진다

 

잘못 걸렸다하면 쥐 띁어 먹거나, 앞에서 뒤로 고속도로가 훤하게 나게된다

그러면 그 모습으로 하루 정도를 버티어 보거나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정문에 있던 이발관에서 마무리를 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유명한 전 교련선생님

그 선생님한테 걸리면 이유도, 사연도 필요없다

 

어떤 놈은 오기로 까까중 머리를 하고 학교 나타나곤 했다

하긴 그것도 두상이 이뻐야 가능 하지.... 

 

당시 정문에서 선배 규울부들이 가장 많이 한 단속은 단연 두발이었고

다음이 이름표 부착- 볼펜으로 쑤셔서 들어가면 탈선 음모죄다

턱 밑에 있는 혹크를 채우고 다니는지- 이것이 풀려 있으면 선배에 대한 도전이다

모자는 제대로 쓰고 다니는지- 멋쟁이친구들은 챙을 확 쉬고 다닌다

모자 마크는 제대로 달려 있는지

웃옷 옷깃에 학교표시와 학년표시는 제대로 부착되었는가

그리고 교복을 개량한 나팔바지 등도 단연 단속 대상이었다.

 

두발단속에 대한 학교와 선배들의 강한 의지에 맞서

하급 다른 재학생들은 조금이라도 길러 보고픈 강한 반감이 쌓여가고...

 

그러다가 우리가 고 3 이었을 때 기여코 사건이 터졌다

학교당국의 지나친 두발단속에 반감을 가진 학생들이 교실을 뛰쳐 나가는 집단 행동을 한 것

 

학교에는 비상이 걸렸다

두발단속에 대한 반감으로 수업을 거부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당시 교장선생님이셨던 이옥문 교장 선생님은 운동장에 우리 전체를 집결시켜 놓고

강한 톤으로 학교측의 강력한 메세지를 전달하였다

 

앞으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긴 두발은 계속 강력하게 단속하겠다는 것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

3학년 담임들도 긴장하였다

 

그런 메세지를 전달하는데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평소 항상 인자만 하셨던 교장선생님은 목소리도 떨리고, 몸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두발로 인하여 학생들이 집단행동(?)을 한 것에 대한 충격이었다

 

단 한번의 시위(?)로 끝난 두발 단속에 대한 학생들의 집단행동은

서슬퍼런 학교측의 강력한 단속 의지와 당시 교련선생님들에 의해 진압되었다

그리고 그런 행동에 의해 돌아 온 것은 완화보다는 강화로 선회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당시는 학생들에게 스포츠 머리를 요구 하였다

옆과 뒷머리는 바짝밀고

윗머리와 앞머리는 조금 길게 기르게 한....

그리고도 앞머리는 더 이상 길지 못하게 좀 길다 싶으면 천측인 30센티자가 등장하곤 했다.

 

선배들의 두발단속과

머리를 조금이라도 길러보고 싶은 학생들의 작은 소망의 충돌

29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업은 계속되고 있다. 

 

자율과 통제의 문제인가

학생인격 침해와 교육적 가치인가

두발 자유화 문제는 과거나 지금이나 결론내지 못한 우리사회의 과제가 되었다

 

한때 사라졌던 교복이 다시 부활되는 것은

교복이나 두발이 단순히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는데 있다

사실 단정한 교복에 긴 머리가 어울리지 않는 것은

단정한 교복에 단정한 머리까지를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지금도 학교 앞에 자리 잡고 있는 이발관

 

 작은 길에 불과 했던 학교 진입로는 양쪽에 있었던 플러타너스는 간 곳이 없고

아파트 진입로와 겸하면서 널직하게 뚫리고

멀리 아파트 뒷쪽으로 교가에 나오는 초산이 5월의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