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지금

나의 공직생활-자지필지

goldenfiber 2007. 5. 29. 22:14
 

나의 공직생활 - 자지필지


지금의 행정 통신수단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전화부터 PC통신, 전자게시판, 전자결재, FAX, 화상회의 시스템 등등

전화도 1인당 1대씩 배당되고 PC도 1대씩 지급되어 있다.

촌놈이 공직을 시작했을 때는 면사무소에 한 대밖에 없는 전화기 핸들을 돌려

 “교환 교환! 00과좀 대줘요”

하면서 교환을 찾아서 어디 부서 좀 연결해달라고 했던 것이 엊그제 일 같은데 행정 통신수단의 발달은 하루하루 변화는 과학문명의 산물임에 분명하다.

핸들에서 - 다이알식 -보턴식으로 변하던 전화기는 이제는 너나 할 것 없이 아무데서나 울어대는 핸드폰을 소유하고 있으니 본래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소식틀이 아니라 공해로 전락하고 말았다 .

 

1980년대 초반

면사무소 산업계에서 수도작(水稻作), 병충해 업무를 담당하던 때였다

수도작이란 행정용어로서 논 농사업무를 주로 본다는 뜻이다

매일 오후 1시가 되면 군청에서 각 읍면에 행정방송을 시작한다.

전언통신문(傳言通信文)이라하여 군청 방송실에서 읍면에 시달할 시행문 내용을 방송을 통해 불러주면 읍면에서는 부지런히 받아 적어야 했다.

어찌보면 행정에 군대통신을 접목시킨 결과 인지 모른다

 

행정방송의 본래취지는 긴급한 공문시행을 위하여 도입한 통신수단이었지만 부서에 따라선 급하지 않은 것도 시달되는 경우도 예사였다.

당시야 행정방송을 통하여 제일 많이 시달되는 것이 농산과 ,새마을과 소관이 대중을 차지했던 시대였다.

그러다가 이를 제대로 받아적지 못한 읍면에서는 군 담당자가 잘아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물어봤다가는 물어본 당사자는 물론이고 맥없는 담당계장, 부면장까지 혼나는 것이 그때만의 상황이었다

그러던 병충해 방제가 한참 진행되던 어느 여름날

병충해가 심하여 들판마다 벼들이 주저앉기 시작했다.

마침 행정방송에서 병충해 방제를 서둘러라는 전언통신문이 있었는데 촌놈이 맡은 업무와 관련된 전언통신문중에 중간을 적지 않고 건너 뛴 것이 있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촌놈은는 군청에 물어 볼 여유를 감지 못하고 인접면인 Y면에 전화를 걸어 전통을 받은 직원을 불러 물어 보았다.

 

촌놈 자신부터 그 농산용어를 처음 들어 본 터라 무슨 뜻인지 모를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했고 공문으로 시행되지 않고 전통이라는 행정통신 수단을 빌어 쓰다보니 의사전달이 제대로 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Y면 전통(傳通)을 받은 여직원은

“자지뭐라하는데 차마 적을 수가 없어서 공란으로 나뒀어요”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한 촌놈은 다시 I면으로 다시 전화를 하였다.

전통을 받은 그 여직원도

“자-뭐라 하는데 적당히 ‘잡지필지’라고 적었어요”

하는 대답만 얻을 수 있었다.

도저히 해답을 찾지 못한 나는 용기를 내어 군청 담당자에게 물어 보기로 하였다.

“방금 전통에서 자지뭐라 했다는데요 우리 직원이 제대로 적지 못해서 그런데요 무슨 내용인가요?”

“예에~ 그것은 좌지필지를 철저히 조사하여 방제 작업에 만전을 기하기 바람이란  내용인데요”

그랬다 ‘좌지필지(座地筆地)’가 스피커를 통해서 나오다보니 ‘자지필지’로 들릴 수 밖에 없었고 이를 받아 적던 여직원들은 당황한 나머지 무슨 전통에서 상스런 소리가 다 나오는가 하여 차마 글로 ‘자지필지’라고 적을 수가 없어서 적당히 ‘잡지필지’ ‘자뭐필지’등으로 적은 것이었다

 

내용을 확인한 촌놈은 어이가 없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우리 행정 용어가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느끼면서 행정용어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쓰다보니 듣는 이에 따라선 전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했다.

행정용어에는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조어(組語)를 많이 만들어 쓴다 

지금도 각종 보고서에서는 지난(持難-더할 수 없이 어려움), 밀식(密植-베게 심음), 적심(摘心-성장과 결실을 조절하기 위하여 나무나 농작물 줄기의 정아(頂芽)나 생장점을 따내는 일)....

전통(전언통신문의 약자)이란 공문시달방법은 당시만 해도 있을 법한 일지만 지금 입사한 새내기 젊은 공무원들은 그런 얘기하면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이야기로 치부하는 통에 세대차이를 엄청 느끼고 있다.

행정전화보다는 일반전화를선호하고, 나아가 핸드폰을 더 선호하는 신세대 공무원들에게는 아득한 옛날 얘기가 되는 것이다


*좌지필지(座地筆地) : 병충해로 인하여 벼가 성장하지 못하고 주저앉는 논 다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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