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영원한 본향 수리산(33)

goldenfiber 2010. 5. 22. 12:34

 

(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묘역)

 

수리산 성지는 최경환 성인께서 순교하시기 전 약 3년여 동안 그 일가족과 함께 사시며 교우촌 공동체를 형성하신 신앙의 터전이자

기해 박해로 인해 1839년 9월 12일 옥사 순교 하신 후에 다시 묻히심으로써 성인의 얼이 살아 숨쉬는 유서깊은 곳이다 

 

예로부터 담배를 재배해 왔다해서 '담배골', 골짜기 모양이 병목처럼 생겼다 해서 '병목 안'으로 불리는 수리산은 행정구역상 안양시 만안구 안양9동

 김대건 신부와 함께 한국 최초의 방인 사제로 피땀 흘린 어린 사목 활동을 폈던 최양업 신부의 부친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이 수리산 골짜기에 잠들고 있다

 

 

 

 

 

 (순례자 성당 안)

 

 (우리 네식구 봉헌 초 )

 (성례 마리아 집)

 (성 최경환 자택성당)

 

 

최경환 성인은 1804년 충청도 다락골 새터(현재  청양군 화성면 농암리)에서 태어났다

내포지방의 사도 이존창의 후손인 세살 위인 이성례(마리아)와 결혼하여 18세 때인 1821년 아들을 낳았는데 이가 최양업 신부이다

그 이후 믿음 때문에 쫓기어 서울 벙거지골(죽동)로 이주하여 생활하다가 강원도 금성으로 유랑길을 떠난다

하지만 계속되는 배신자들의 등쌀에 다시 경기도 부평을 헤매다가 숨어 지내기 좋은 1932년 경 이 곳 수리골에 정착한다

 

최경환 성인은 1936년 당시 15세이었던 아들 최양업을 모방신부에게 마카오 신학생으로 떠나 보낸 뒤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 온 교우들과 담배를 재배하면서

수리골에 교우촌을 형성하고 전교회장 직을 맏는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불안해 하는 교우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돌아 보던 중 7월 31일  서울에서 내려온 포졸들에게 체포 되는데

다른교우들과 달리 최경환은 아들을 신학생으로 유학생을 보냈다는 이유로 부인 이성례 마리아와 아들 희정, 선정, 우정, 신정 그리고 젖먹이까지 모두 일곱식구가 함께 체포되어 옥에 갇힌게 된다

옥에 갇힌 뒤 세살짜리 막내가 굶주림에 숨을 거두자 이성례는 나머지 아들들을 모두 잃을 지 모른다는 생각에 배교를 하겠노라고 하고 아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간 뒤 마음을 바꾸어  옥에 갇힌 남편을 생각해 아이들만 놓고 다시 옥에 갇히는 몸이 된다

최경환 성인은 포청에서 하루 걸러 형벌과 고문을 당하며 태장 340도, 곤장 110도를 맞았으나 끝가지 신앙을 잃지 않았다

모진 형벌로 전신이 헤어지는 와중에도 최 프란치스코는 "내 평생 소원이 칼 아래서 주를 증거하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죽는 것이 주님의 명이니 뜻을 이루지는

못하게 되었다"하고는 영혼을 천주께 바쳤다

드디어 1839년 9월 11일에 최후로 곤장 25도를 맞고 그 이튿날인 9월 12일, 당시 36세의 나이로 갖은 고문에 의한 후유증으로 옥에서 치명하고

그 이듬해인 1840년 1월 31일 부인 이성례 마리아도 당고개에서 참수된다

 (십사처상, 묘역 입구)

 

 (십자가의 길)

 

 

 (성모동굴)

 (수리산)

  (성모님 곁을 민들레가 지키고 있다)

 

최경환 회장이 순교한 뒤 옥졸들은 그 시신을 가마니에 넣어 노고산(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서강대학교 뒷산)밑에 갔다 버렸는데

이 소식을 들은 둘째 형 최영경 부자가 그 시신을 찾아 이름을 적은 사발과 함께 그 산 중턱에 가매장하였다가 몇해가 지난뒤 시신을 발굴하여 과천 뒤뜸이 앞, 그가 살았던 수리산으로 이장하였다

그후 최경환 회장이 1925년 7월 5일 복자품에 오르게 되자 교회당국에서 1930년 5월에 그의 무덤을 찾아 시신을 발굴하여 명동 대성당 지하묘지에 안치하였고

1967년 다시 절두산 순교 기념관으로 옮겨 모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최경환 회장이 한국 천주교 200년 기념을 위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984년 5월 6일에 성인 품에 오른 것과 달리

최양업 신부의 모친인 이성례 마리아는 배교했다는 이유로 제외되었다

 

성 김대건 신부가 자라고  신앙의 터전이 곰배마실이라면 최양업 신부가 자라고 신앙의 터전이 이룬 곳은 이곳 수리산이다

이 곳 수리산은 김대건 신부가 성장한 골배마실, 숨은 이들의 마을 '은이교우촌'과 함께 경기도에서도 가장 유명한 교우촌이자

카타콤바와 같은 박해 시대의 비밀교회로서 신앙을 이어가는 본산이자 본향이 되었다.

모방 신부도 조선 입국이후 끊임없이 지방 교우촌을 순방하는데 모방 신부가 방문한 교우촌 중에는 수리산과 골배마실이 들어 있었다.

 

한편 사시사철 물이 흐르고 숲이 우거져  수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이 곳 수리산은  지금은 주변에 각종 음식점과 함께 개발의 바람을 타고

수리산 자락의 뒤뜸이 마을과 좁은 입구로 가려진 병목한 마을은 그 자취를 감추고 안양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어 버렸다

 

현재 수리산 성지에는 성지 성당과 최경환 자택 성당이 위치하고 있으며

그 반대편 자락으로 십자가의 길 14처와 함께 최경환 성인의 묘소 그리고 성모동굴이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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