智士 칼럼(신문)

가을 운동회는 어디로 갔을까?

goldenfiber 2011. 9. 27. 19:51

 

2011년 9월 27일 전라일보 '젊은 칼럼'

 

가을 운동회는 어디로 갔을까

김철모/시인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백로가 지나고 추분이 지났으니 그럴 법도 하다. 하지만 성급하게 찾아 온 추석처럼 요즈음 아침, 저녁 기온은 늦가을을 연상케 한다. 서서히 입맛을 다지는 가을 초입에 여기 저기 축제를 알리는 홍보물이 넘쳐나고 있다. 세계소리축제며, 서예비엔날레, 와일드 푸드축제, 지평선축제, 서동축제, 구절초축제 등등 가을을 맞는 우리 전북은 지역 축제로 붉게 물들어 가고 있다.

어릴적 지역 축제가 빈약했던 40년 전의 상황은 인근의 황토현 동학제가 유일한 대축제였고 면단위 행사로는 국민학교의 가을 운동회가 가장 큰 축제이자 지역주민의 잔치였다. 가을 운동회를 준비하기 위해서 여름 방학 때부터 시작된 운동회 연습은 비록 뙤약볕에 내 몰린 우리였지만 그래도 총연습을 거쳐 운동회가 열리는 날, 아이나 어른이나 가리지 않고 면민전체가 참석한 하루의 시간은 아이들에게는 그동안 고생하면서 준비했던 자신의 모습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주민들 입장에서는 이웃 마을사람들과 오랜만에 만나서 대화를 나누며 막걸리 잔을 기우리는 소통의 계기가 운동회의 묘미였다. 운동회 진행은 전체가 한 타령으로 어울리는 메스게임과 행진, 체조 등 통합의 프로그램이 있는 반면, 청색띠와 하얀띠를 이마에 두르고 상대팀과 게임을 통해서 승부를 가리는 기마전과 흥부네 박 터뜨리기, 릴레이 계주 등은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 서로 간에 우의를 다지는 게임이 혼합되어 진행되었다. 아무래도 가을 운동회의 하이라이트는 청군, 백군으로 나눠 진행하는 응원전과 줄다리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처럼 확성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목이 터져라 목청을 통해서 자기편을 응원하거나 나무 짝짝이를 이용해서 응원해야하는 당시의 상황에서는 팀원들이 한 목소리와 한 행동으로 움직이는 단합만큼 다른 대안을 없었다. 식구들과 나누는 점심과 함께 부대행사로 치러지는 학부형 엿먹고 달리기나 400미터 계주는 넘어지고 바지가 내려가고 하는 해프닝이 벌어지는 가운데 또 다른 가을 운동회의 매력이 되었다.

가을소풍과 함께 힘들지만 유일하게 기다려졌던 가을운동회, 지금은 그 자취를 쉽게 찾을 수 없다. 전교학생이 보통 1천5백여명 정도가 어울리는 함성이 고작 20~30여명 남짓한 학생으로 청군과 백군을 나눌 이유도, 함성을 높여 뛰어 놀 명분도 잃어버린 지 오래가 되었다. 가끔 고향 지사리를 가면서 너무 고요해진 모교의 운동장을 바라보는 필자는 된장 풀어 만든 물로 우린 감도 한번 먹고 싶고, 교정을 울리는 응원의 큰 북소리도 지금 한번 듣고 싶다.

'智士 칼럼(신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0) 2011.10.19
영화 '도가니'와 '숨'  (0) 2011.10.05
성급한 추석  (0) 2011.09.06
나는 가수다  (0) 2011.08.23
입추와 말복사이  (0) 2011.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