智士 칼럼(신문)

성급한 추석

goldenfiber 2011. 9. 6. 12:57

 

2011년 9월 6일 전라일보 15면, '젊은 칼럼'

성급한 추석

김철모/ 시인


올 여름은 유독 덥고, 비도 많았다. 봄인지 여름인지 우리도 모르게 찾아왔던 여름이 막바지 기승을 부리며 성급하게 다가선 추석을 다들 거부하고 있는 듯 하다. 추석이라고 하면 모름지기 들판도 누렇고 뉘엿뉘엿 산에도 겨울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고 나무에 매달린 과일도 정열을 뽐내는 때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가진 것은 없어도 일년 동안 땀 흘려 지어 놓은 농사를 하나 둘 거두어 햇곡식과 햇과일로 감사하는 마음을 조상과 하늘에 표시를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산과 들은 추석을 쉽게 받아들일 준비가 아닌 듯 하다. 그런데도 올 추석은 무엇이 그리도 급했는지 예년에 비해 한달정도 빨리 우리에게 나타나 앙탈을 부리고 있으니 우리 맘까지도 조급해진다.

 어릴적 추석은 가진 것은 없지만 맘만은 풍성하였다. 명절을 앞둔 부모님의 걱정스런 속마음은 알바가 아니었다. 꿈만 잘 꾸면 검정 고무신을 한 켤레를 얻어 신을 수도, 다가올 겨울에 입을 옷 한 벌을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명절이었겠는가. 더구나 추석날은 과일이며 떡이며 먹을 것도 풍성하였다. 필자의 고향 정읍 지사리 집 바로 뒷산은 부모와 조상들이 대대로 묻혀 공동묘지가 되다시피 한 선산 서당봉이 자리하고 있다. 그곳에는 50여기의 조상 묘가 자리 잡고 있는데 가까운 곳에 집단화되어 있어 성묘하기에는 편하지만 벌초를 위해서는 예취기까지 동원한 20여명의 인력이 이틀간 넘성거리지 않으면 쉽지 않은 명절 일감이 되었다. 추석날 오륙십 명이 넘는 인원이 줄을 지어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할아버지께서는 늘 흐뭇해 하셨다. 그럴 것이 외아들이었던 당신 할아버지 손들이 이렇게 대 식구를 이뤄 조상 묘를 찾으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조부는 집에서 1키로 이상 떨어진 해발 400여 미터의 산인 신선대에 홀로 계시기에 성묘 가는 길은 거의 등산수준이자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을 우리 집안끼리 헤치고 나가야 하는 험난한 고행의 길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필자의 아버님은 세상을 등지기 전까지 90의 노구를 이끌고 늘 감사한 마음으로 이 성묘 대열에 합류하곤 하였다.

 성급한 추석에다 지난 7월과 8월에 찾아 온 태풍과 호우로 입은 피해의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채 복구도 되기 전에 맞는 올 추석은 그래서 덜 익은 과일을 먹는 기분이다. 더구나 미국발 금융위기가 경기침체와 물가인상으로 이어진 현 시점에서 때 이른 추석은 더욱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또 추석명절 자체가 작은 것이라도 나눠먹는 우리의 고유풍습이 아니던 가, 성급한 추석이지만 작은 것이라도 같이 나누는 풍요로운 올 추석명절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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