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전다리 옆 전주천변 우안에 세워진 순교터
15세 어린나이에 배교를 거부하고 전주천에 수장되었다
전주천 하상에서 바라 본 싸전다리
초록바위 성지는 전동성당과 전주감영의 주문이었던 풍남문 사이로 난 싸전다리(과거에 쌀을 파는 가게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
쌀전이 사전으로 변이)를 건넌 위치로 지금으로보면 싸전다리와 매곡교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초록바위는 곤지산 마지막 자락으로 조선 조에 주로 죄인들의 형벌을 취하던 곳으로,
1886년(병인년) 새남터에서 순교한 성 남종삼(요한)의 14세 된 아들 남명희와 순교자 홍봉주(토마스)의 아들이(이름은 확인되지 않고 있음) 수장된 곳이다
이 두 가정은 온 가족을 처형하거나 노비로 삼고 가산을 몰수하는 혹형을 받았는데
당시 남명희와 이름이 전해지지않는 홍봉주 아들은 당시 14세에 불과하여 조선 국법의 기준이 15세가 넘어야만 처벌할 수 있게 되어
15세가 되기까지 전주감옥에 수감했다가 나이를 채워 전주천에 밀어 넣어 죽였다
'성 남종삼'은 앞서 학산 묘재 성지편에서 소개한 것처럼 한국 교회사 안에서 가장 높은 벼슬까지 올랐던 인물로
러시아의 침입으로 조선이 시끄러워지자 프랑스 주교의 힘을 빌어 외교력으로 이를 해결하려 했으나 이것이 적기에 이뤄지지 못했고,
이것이 빌미가되어 대원군의 심기를 건들여 1866년 1백년 한국 천주교회사 안에서 가장 혹독한 박해로 기록된 병인박해를 발발하게 된다
성 남종삼은 서울 인근에서 체포되어 의금부로 연행되어 홍봉주, 이선이, 최형, 정의배, 전장운 및 베르뇌 주교, 다블뤼 부주교 등과 함게 문초를 당하고
그해 정월 21일 홍봉주와 함게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참수된다
이어서 남종상에게 많은 믿음을 가르쳤던 그의 부친 남상교는 공주 진영으로, 장자인 남규희는 전주 진영으로 끌려 가 각각 순교하였고
처 이소사는 창녕으로 노비로 갔다가 순교하고, 당시 15세의 어린 나이에 붙잡혀 갔던 명희는 전주 감옥에서 수감한 뒤 나이가 15세에 이르자 전주천에서 수장되는 등
성 남종삼 가족은 3대가 순교하는 박해를 당했다.
또한 홍봉주는 충남 예산출신으로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홍낙민의 손자이며, 부친 홍제영 역시 기해박해 때 순교한 바 있다.
모친 정소사(丁召史)는 신유박해 때의 순교자 정약종의 믿형인 약현의 딸로 기해 박해때 남편과 함께 순교하여 4대가 순교한 집안이다.
아쉽게도 초록바위는 완산동에서 좁은 목으로 통하는 도로를 내는 과정에서 일부 잘라졌고 그 위치는 훼손되었으나
그 후 순교한 위치를 찾아 초록바위 길 건너편 전주천변에 초록바위 성지를 세웠으니
적은 나이지만 주님을 믿고 따른 그들의 넋을 이제야 추앙하고 위로하게되어 다행이다
'성지순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리치골 성지 (0) | 2013.06.09 |
---|---|
서천교 성지 (0) | 2013.06.06 |
제30회 전국가톨릭공무원 피정 개최 (0) | 2013.05.26 |
묘재성지 (0) | 2013.04.30 |
소박한 신앙공동체 구산성지 (0) | 2012.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