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 유감(有感)
김철모(시인, 전북시협 정읍지역위원장)
내장산하면 4계절이 모두 아름답지만 특히 단풍을 빼놓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내 고향 정읍에 내장산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추억도 많다. 그중 내장산과 관련된 두어 가지 추억을 회상해 본다.
초등학교시절 가을 추수 날, 부모님을 돕지 않고 내장산으로 줄행랑친 적이 있다. 당시 추수는 날을 받아 동네 아주머니들이 마당에 둘러 벼훑이로 벼를 털어내는 작업이었다. 그러니 잡일도 많았다. 하지만 동네 형들과 미리 잡은 약속을 핑계로 형과 도망을 친 것이다. 내장산 구경을 잘 마치고 집에 들어오는 것이 걱정이었다. 결국 몰래 담을 넘다가 아버지한테 들켜 평소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아버지로부터 엄청 혼난 적이 있다.
또 하나는 89년으로 기억된다. 평소 혼자 등산을 좋아했던 나는 한 여름에 내장산 종주를 위해 장군봉을 출발했으나 망해봉 쯤 갔을 때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날씨가 덥다보니 계곡보다 산 능선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등산로에서 벗어 난 것이다. 전진과 후퇴하기를 여러 번, 몸은 지쳐가고 이슬비와 함께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최악의 경우 야박을 할 각오를 하던 차에 오후 7시가 다 되어서야 하산하는 등산객을 만났다. 그 분을 따라 내장사까지 내려온 시간이 8시 반이니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날 발생하였다. 전날 무리했던 몸을 충분히 풀어 주지 못한 것이 급성 허리통증으로 나타난 것이다. 결국 그 날은 병가를 내야했고 며칠을 고생하였다. 그 후로 매년 봄이면 허리통증이 단골로 찾아 왔다.
내장산은 예로부터 지리산 등과 더불어 호남의 5대 명산으로 손꼽혀 왔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조선 8경중 하나이고 남금강(南金剛)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였다. 또한 80년대 가을이면 정읍시내는 내장산을 찾은 넘치는 관광객으로 인해 매년 몸살을 앓았다.
요즘 고향에 살면서 종종 내장산을 찾곤 하는데 단풍이 절정을 이룬 지난 11월초 내장산은 예전과 달리 한산하였다. 물론 코로나-19 영향이 있겠지만 단풍의 명소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였다. 사람들의 여행 취향이 바뀐 것이다. 이제 단풍하나로 승부를 거는 것은 무리수이다. 어릴 적 추억을 간직한 내장산이 사시사철 정읍시민은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와 관광객들에게 휴식과 여유, 힐링의 명소로 다시 자리잡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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