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에서 배운 민주주의
김철모(시인, 전 익산부시장)
필자가 대학원에 다닐 때 행정학에서 끌어다 쓰는 학설 대부분이 미국 민주주의에서 파생된 행정이론이 주로 많았다. 또한 행정현장에서도 시행된 수많은 제도들이 그 이론을 따랐다. 흔히 민주주의를 말할 때 사람들은 유럽식 민주주의보다는 미국식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원류처럼 받아 들였던 것도 사실이다. 잘 아는 바와 같이 미국 대통령 선거방식은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방식과는 상당부분 다르다. 우리처럼 국민전체 유권자 중에서 누가 많이 득표하느냐 방식이 아니라 국민의 한표 한표가 모여져 주단위의 선거인단 538명을 승자독식 방식으로 다수획득한 자가 당선인이 되는 방식이다. 그러다보니 당선인 예측도 쉽지 않다. 이번 대선에서 코로나 대응과 인종차별, 침체된 경제, 보호무역주의 등이 주요 선거 이슈였다.
그런데 문제는 어려운 개표방식도 그렇거니와 당선인이이 확정된 이후 선거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기이한 일이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미국 대통령 선거의 백미는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고 당선인에게 축하를 보내는 것이 미국 민주주의 상징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으니 세계가 놀라고 있다. 부정선거 운운하며 소송 전을 벌이는가 하면 낙선이 확실함에도 맘에 들지 않은 국무위원을 해임하거나 지지자들을 동원하여 집단행동을 하기도 한다. 최근 선거후 20일, 당선인이 확정된 후 16일 만에 당선인에게 정부이양이 시작되었으니 얼마나 가관인가.
우리나라 사정을 보자.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미국 민주주의에 비하면 그 역사가 매우 짧다. 물론 유럽식 민주주의에 비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행정의 기본 틀이나 각종제도는 일본의 잔재가 일부 남아 있지만 민주화 이후 미국식을 거의 원용해 사용해 온 것도 사실이다. 이번 미국 대선과정을 바라보면서 선의 민주주의를 전제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리라는 기대와 달리 작동 안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배운 거다.
그럼 지금 우리나라는 어떤가. 대통령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이 가장 큰 문제라 본다. 여야 협치를 고대할 수 없는 상황과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집권당, 모든 것을 정쟁의 도구로 삼고 네 편과 내편을 확실히 갈라치기하는 모습들이 한번쯤 우리 스스로 뒤돌아 봐야할 과제를 남긴다. 선진국 모델이었던 미국(美國)이 미국(尾國)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제대로 굴러가는지 다시금 되씹어 봐야 할 것 같다.
제도적으로 삼권분립 정신은 제대로 작동되는지. 지방자치는 살아 있는지, 사법기관의 정치적 중립의 보장과 훼손은 없는지, 사법부는 중심을 잡고 제대로 서있는지. 국민의 대표기관인 입법부가 행정부를 제대로 균형과 견제하는 구조인지, 공영방송 등의 정치적 편향성은 없는지. 기득권자가 선택적 정의에 매몰된 것은 없는지, 출범하는 공수처는 약일까 독일까 등등 개헌을 통해서라도 살펴봐야 할 것이 무수히 많다.
민주주의는 패어 플레이 정신이다. 그러나 이번 미국대선에서는 그 정신이 사라졌다. 미국(尾國)이 미국(美國)을 삼켜버린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미국 민주주의가 만능이 아니고, 미국 민주주의가 민주주의 완결판이 될 수 없음을 여실히 봤다. 민주주의 최종목표는 수단에 불과한 정당의 정권쟁취가 아니라 절차적 정당성 확보와 국민을 책임 짓고 국민의 편안함을 진정으로 추구하는 정치임을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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