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나의 죽음과 한국정서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비가 그의 애인(어느신문에서는 남자친구라고 표현) 도리 알-팔레트와 함께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연일 국내외를 막론하고 방송이나 신문에서 그와 관련한 기사로 야단 법석이다.
어찌되었든 한나라의 왕세자비였던 그였기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당연시 되겠지만 그 내용은 사고내용 그 자체보도는 물론 그동안의 다이애나가 살아온 36년, 사고를 두고 여러 가지 억측들이 난무하고 있다는 보도들이다
우리가 여기에서 한가지 이해를 잘못한 부분이 생겼다.
그것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사고소식을 듣고 영국을 비롯한 세계각국의 반응과 우리주변에서 느끼는 반응과 감정은 전혀 색다르기 때문이다.
셰계의 훌륭하고 커다란 인물을 잃었다는 반응인 반면 우리 주위에서 나타난 반응은 많은 스캔들을 만들어 내고 왕실의 명예로움을 스스로 박차고 나간 그녀에 대한 당연한 하늘의 귀결이었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관심을 갖는 부분은 사고를 유발케 했다고 볼 수 있는 파파라초들에 대한 처리문제였다.
몰락한 귀족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근친 결혼만을 고집해온 영국왕실의 전통을 깨트리면서 왕세자와 결혼한 다이애나는 그때부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왕실의 엄격한 규범에 적응치 못하고 찰스황태자의 스캔들에 이어 보복이라도하듯 이어지는 다이애나의 스캔들 그리고 별거, 세인들의 관심속에 이혼까지 이르르고, 이혼을 하자마자 이어지는 또다른 스캔들,
그러나 그녀는 그 힘겨운 속에서 이사회에서 뒷쳐진 이들의 손을 잡았다. 그렇지만 그녀의 사생활은 자신의 사고까지 몰고왔던 파파라초들의 앵글에 예외없이 걸려들어 그동안 그녀의 실생활이 세상에 공개되어 그녀의 설자리를 잃게 했다.
이혼이후 그녀는 개인적인 불행을 딛고 일어나 어둡고, 가난한 자에게 손을 내미는 강인한 여성의 모습을 보였다.
대인지뢰 금지운동이며, 에이즈퇴치, 심장병환자돕기 캠페인등.....
그러나 한국사람의 정서는 이러한 훌륭한 일을 다소 복잡한 그녀의 사생활로 덮어버리고 말았다.
그에 대한 메마른 한국적 정서는 인간적인 연민으로 이해보다는 남자들에게 더욱 심하게 나타났다.
그녀의 그간의 행적은 행복에 겨운 한 여인의 변명 바로 그것이었다.
세계가 하루 생활권으로 변하여 국경이 없는 한동네가 되었건만 나라마다 가지고 살아온 정서와 문화는 쉽게 허물어질지를 모르고 있다.
한국적 문화 잣대를 가지고 세계 다른 나라의 정서를 잰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일까.
그러나 세계는 그녀의 장례식을 인공위성을 통해 중계하는 등 그녀의 마지막 가는길을 연민과 아쉬움, 슬픔으로 표현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정서는 서로 다르다 하드라도 그녀의 복잡한 사생활보다는 그녀의 밝은 부분을 보려는 세계인들의 노력 자체가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을 까.
1997년 9월
(2007년 8월 31일이 다이얘나비 서거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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