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지금

황토현

goldenfiber 2008. 5. 18. 11:40

황토현 전적지는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에 소재한 동학혁명 전적지중 상징적인 곳이다

동학혁명의 주요 유적지는 이 곳 가까운 곳에 전봉준 선생의 고택이 있고

배들건너 만석보유지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이평면 소재지 말목장터에 감나무가 서 있다

 

농민군 입장에서는 관군을 대파 시켜 대승을 거둔 곳이지만,

관군(정부군) 입장에서는 정예화되지 않은 농민군에게 대패한 치욕의 현장이기도 하다.

 

당초 이곳은 1963년 동학혁명기념탑이 세워진 이래 방치하다시피 하다가

그후 기념관이 등장하고, 5~6공시절에 전적지로서 면모를 갖추는가 했더니만

98년도 김대중 대통령 방문 시 393억원 기념관 건립사업비 전액을 국비로 지원 약속했으나

문광부가 기념관사업을 박물관사업으로 분류하여 국비지원 30%, 지방비 70% 부담토록 하여 지지부진 추진되지 못하고 지지부진.... 

지금은 동학혁명시설 관리 주체가 정읍, 전라북도, 정부 등으로 오락가락하는 과정에서 주변지역이 나대지로 방치되고 있다

 

 제세문

 기념관

 제민당

 전봉준 선생 동상

 

 동학혁명 기념탑

 기념탑에는 제폭구민, 보국안민(保國安民)으로 적고 있으나 모든 갑오동학혁명 자료에는 보국안민(輔國安民)으로 적고 있다

보국안민(保國安民)과 보국안민(輔國安民)이 다르다는 황토사학자 말을 빌리면

당시의 농민군 봉기가 반역과 같은 것이어서

앞의 보국안민은 임금의 실체와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고

뒤의 보국(輔國)안민은 임금의 실체와 정통성은 인정하면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자는 것이니 역성혁명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녹두는 체구가 작고 야무진 전봉준 장군을 일컫는 말이고

가보새는 당시가 갑오년이기에 은어로 사용하면서 갑오년 다음이 을미년, 을미년 다음이 병신년이라

당시의 직접대고 조정을 비판할 수 없다보니 세태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면서

갑오년 농민혁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자는 뜻이 담긴 당시 민초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노래로 보인다

 1960년대 기념탑이 세워질쯤 헬기가 황토현에 내린다고 해서

이곳과 인접면에 거주하던 촌놈은 동네 형들하고 10여리를 걸어서 자라고개를 넘어 구경왔던 기억이 있다

정작 당시의 실제 얼굴은 사람들에 가려 보지 못하고 헬기만 앉고 뜨는 것만 보았는데

그 당시 5.16 혁명을 일으켰던 박정희 의장이 현지를 방문한 것으로 기억된다

 

 

 

 

 갑오동학혁명 기념탑(황토현 정상부)에서 바라본 천태산, 당시 황토현 승전을 묵묵히 지켜 보았을 것이다

 두승산, 고부 관아와 이 곳 황토현 양쪽을 다 바라볼 수 있는 두승산은 민초들과 같이 살면서 울고 웃었을 것이다

 황토현 정상부에서 본 전봉준장군 고택방향(기지국이 선 주변), 사진 오른쪽 방향이 문제의 반석보가 있었던 곳이다

 광장에서 바라본 두승산

 110년이 지난 황토현 전적지 광장에 보리가 한창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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