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지금

벌초,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goldenfiber 2007. 9. 9. 21:31

추석을 앞두고 너나 할 것없이 주말을 맞아 조상들의 이발에 여념이 없고

고속도로는 뒤 돌아가는 귀경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벌초는

봄에 조상의 묘를 찾아 예를 갖추는 한식과 버금가는 가을에 올리는 조상에 대한 예라 할 수 있는데

벌초는 추석 전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여의치 않으면 당일 해도 무방하다

따라서 추석은 단순히 추석을 앞두고 치루는 1회성 행사라기보다

여름을 치르면서 혹시 무너진 곳은 없는지, 물 세는 곳은 없는지

웃 자란 풀을 잘라 줌으로써 곧 닥쳐올 겨울을 나는데 봉분등 뒤 덮고 있는 잔디들의 활착을 돕고,

자란 풀로 덮어져 있던 봉분의 통풍을 돕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과거 벌초는 당연히 시골에 사는 후손들의 몫이었고

고향을 떠나 있는 나머지 손들이야 추석 때 잠시 찾아와 성묘하고

그간 고생한 시골 일가들에게  덕담 몇 마디이면 그만이었으나

 

이제는 시골의 후손들이 노령화되고 후손 자체가 거이 기거하지 않는 상태에서

시골과 서울을 굳이 따지지 않고 벌초가 또 다른 집안의 대사가 되고 말았다

 

촌놈의 경우

선산을 바로 인접에 두고 커 나왔던 터라

그동안 수없이 벌초에 참여해왔고 의당 시골사람들이 해야 하는 줄 알았던 것이

세상의 변화만큼이나 이제는 또 다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더구나 고향 집 바로 선산에 집중되어 있는 묘지가 40기가 넘는 상황에서 이제는 시골사람들의 몫이거나

누구하나 특정지어 그 자손에게만 책임을 지게하는 것은 충분한 보상이 없는 상황에서

기대할 수 도 없고, 기대해서도 않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따라서 우리 집안에서도 몇해 전 부터는

추석 1주일이나 2주일 전쯤 주말을 택해 날을 잡아

촌놈으로 해서 고조(高祖) 손 들이 모여 벌초를 하게되는 데

보통 예취기가 3~4대가 동원되고

때에 따라서는 20~30여명이 동원이 돼서 하루를 조상 이발하는 날로 운영하고 있다

 

올해도 어제(9. 8 토) 날을 잡아 집안들에게 연락을 해서

시골과 정읍, 부안, 고창, 전주, 그리고 인천, 서울에서까지 참여해서 벌초라는 대사를 치뤘다   

 

정읍 영원을 중심으로 이루는 우리 일가는

고향 마을에 조금 떨어져 있는 고부 두승산 줄기를 타고 내려온 신선대에 모셔진  고조 할아버지의

3형제 손이다

두승산을 맞서 보고 있고 이평과 덕천 들을 굽어 보는 곳으로 어른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제비 혈로 봉분 바로 밑에 10m가 넘는 바위가 버티고 있는 곳 위에 모셔 놓은 곳이란다

 

 

 (거북이 두상을 하고 있는 바위)

 

비록 제비혈이라 망주도 상도 없는 초라하고

봉분은 비 바람에 시달려 볼품없지만 우리 일가 16촌을 지키고 있는 근간이 되고 있다

더구나 자연의 조화인지 거북이 두상을 하고 있는 바위가 고조 할아버지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이 곳은 거리상으로, 산이 우거져 진입로가 없는 관계로 2명이서 성묘길을 개척하는데

하루를 소비해야만 접근할 수 있는 곳이라서 벌초때만 되면 걱정거리로 남곤 한다

 

앞으로 벌초의 문제는 심각한 문제로 우리에 다가 서고 있고

이제 시골에서도 추석과 성묘의 우리의 고유 미풍 양속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조상 묘를 찾아 성묘하는 집안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아예 발길이 끊어져 묵이는 경우가 허다하니 그 기대를 누가 할 수 있으랴

또한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 과연 벌초를 염두에 두고 생활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으며

추석 때 반드시 조상을 찾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사는 젊은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

 

더구나 벌초라는 작업이 사람의 손을 직접 필요로 하는 쉽지 않은 작업들이라서

일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골의 특성과 노령화된 시골 상황

그리고 과거와 달리 절대적으로 아이들을 낳지 않는 상황에서

과거처럼 집안들이 모여서 벌초를 해야 한다는 것을 기대하기란 무리한 요구일수 밖에 없는 상황에 와 있다

 

근간에 묘지를 정리하여 납골묘나 납골당으로 하기도 하고

벌초 때 아예 성묘까지 마치고 추석 연휴에는 가족끼리 콘도하나 빌려 쉬는 시간을 갖는 집안들도 늘어나고 있으며

추석의 의미도 점점 사라져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집안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에서

요새 젊은 사람들에게 뭘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걱정이다

 

하긴

요즘 콘도에서 맞춤 차례상을 준비하고 고객을 맞고 있으니

그래도 얼마나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 다운 영업 활동인가 

 

 (단정하게 이발을 끝낸 부모님과 조부모, 그리고 증조부모)

 

그리고 벌초에 대한 관심이 점점 쇠퇴해 가는 상황에서 자손들에게 기대하기란 또 어렵게 되었고

 앞으로 추석 전 벌초는 또다른 사회 문제로 대두될 가능성이 커졌다.

 

 

물론 벌초 대리업이 성업되고 있는 것이 결코 이상할게 없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 

전 국토에 산재되어 있는 묘지에 때문에 국토이용도가 떨어지는 문제와 함께

벌초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되는 대목이다

또한 벌초라는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도 두고 볼 일이다

 

앞으로 조상들은

벌초때 한번 이발하거나 추석때 자손들과 상면하는 기회 조차도 이제는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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