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치 덕석의 위력
7월 하순 이맘때이면 사람들은 너나 할 것이 모두들 휴가와 함께 피서를 떠나느랴 부산하다
지금이야 콘도를 빌리고 펜션을 빌어 여름휴가를 즐기지만 촌놈의 어릴적 그때는 감히 언감생시 상상도 못할 일이다
더구나 지금은 텐트도 잘 나와서 집 한 채를 가지고 다니는 격이지만 그 옛날 촌놈이 클적만 해도 그 것 조차도 기대할 수 없었다
텐트의 편리함이야 다들 아는 사실이지만 몇 평 남짓한 평지만 있으면 아무 곳이나 자리를 펼 수 있다는 것이 텐트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래도 다행한 것은 촌놈에게는 장형이 군대에서 가져온 군대야영텐트(삼각텐트)가 있어 큰 자산이었다
형들이 많아 아무래도 피서를 따라 나설 기회가 많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촌놈의 생각이었고 형들은 형들 나름대로 스케줄이 있었기에 어린 동생을 쉽게 대열에 포함시키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촌놈은 용을 써서 그 대열에 합류를 원하곤 했다.
그러다가 어쩌다 그 텐트가 촌놈 천신이 되면 애들끼리 해수욕장 가기는 겁이 나고 동네 애들과 그 텐트를 들고 집 뒤에 있는 야산(서당봉)에 진을 치고 밤을 새며 산속을 헤매며 떠도는 모기떼와 사투를 벌이곤 한다
어머니한테 졸라서 저녁 일치감치 먹고 산으로 이동한 우리들은 어린 맘에 무섭기도 했지만 우리들만의 아지트를 틀수 있다는 재미로 밤을 새며 이이야기 꽃을 피우다 언제쯤 되었을까 참을 청하곤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야영 생활을 하기위해서는 지금처럼 장비가 넉넉지 않은 시절이라서 각자 준비물을 분담하여 야영을 시작하게 된다.
어떤 애는 덮을 얇은 이불을 담당하고,
어떤 애는 잠자리를 편하게 하는 깔개를 준비하고,
어떤 애는 야참으로 먹을 감자나 옥수수를 쪄오기도 하고 어떤 애는 단쑤시(수수)를 꺽어 오기도 한다
그야말로 천하가 부럽지 않은 전원생활이다
그 곳은 그늘이 지고 바람이 잘 통하며 집으로 통하는 길이 바로 있는 곳이 제격이다
어느 날 깔개를 준비한 애가 잠자리가 불편하다며 호밀대로 엮은 덕석(멍석)을 가져왔는데 우선 다른 깔개보다 푹신해서 좋고, 싸리대 등 여러 가지로 밑자리를 깔았다하나 습기를 방지하는데는 아주 이 것만큼 좋은 물건은 없을 거다
헌데 문제는 텐트 출입문을 닦는 순간 매케한 냄새와 함께 코를 자극하는 최루가스같은 감을 느낀 텐트속의 우리들은 견디지 못하고 텐트에서 뛰쳐나왔다
다들 덕석 임자인 아이에게 화살을 돌린다
‘야! 뭣헌 덕석을 갖고 왔간디 이렇게 매웁냐?’
그 아이는 머뭇머뭇하더니 말꼬리를 흐린다
‘으응 낮에 우리 엄이가 꼬치를 좀 널었던 개비여’
그러자 일제히
‘뭐여? 꼬치를 널어써야? 우리 죽는 줄 알았다’
그럼 그렇지, 우기에 대비해서 우선 낮에 딴 고추를 말릴 공간이 없다보니 저녁마다 마당에 깔고 저녁도 먹고 밥 늦도록 누워 지내는 멍석을 몰래 가져왔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날은 좋은 깔개를 밖에다 모셔 놓고 여유 공간으로 활용하고 별수 없이 우리는 불편한 밑자리로 밤을 샐 수 밖에 없었다.
당시에 전축은 고사하고 라디오마저 흔치 않았던 시절,
‘청룡기 고교야구’를 라디오를 통해서 듣는 맛은 과연 요즘 그 어떤 오락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것이었다
특히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의 게임이 있는 날이면 애들은 숨죽이며 순간순간의 경기를 즐긴다
김봉연이나 김성환이 홈런이라도 치기라도 하면 동네가 들썩 들썩한다
군산상고는 늘 전반전은 점수를 내주고 후반전에는 반전을 노리곤 했었으니까
9회말 박종세 아나운서의 '홈런 홈런' 외치는 역전 드라마는 시골에 사는 어린 우리에게 희망을 심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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