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직생활⑦- 두승산 도깨비 불
공직생활에서 추억거리라면 당연 면서기 시절이 제일 많다.
남자들이 모이면 군대‘무용담’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기의 경험이든 선배가 한 이야기든 후배가 들려준 이야기든 자기의 직접 체험한 얘기로 과대포장하어 그럴싸하게 소설이 쓰여 오지만...
읍면동을 거친 지방행정인들 또한 할말도 많고 영원히 잊지못할 추억거리가 많다.
물론 여기에는 7~80년대 지방행정이 주민을 선도(?)하고 나갈 때 읍면동에 근무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 체험이랄까
그때야 억지 행정이 주민의 소득증대로 연결되었고, 반강제 행정이 주민의 생활 환경을 향상시켰음에 분명 부인못 할 사실이다.
그렇지만 당시의 상황을 전혀 고려치 않은 현시점의 시각으로 본다면 정말 잘못 펼친 행정임에 틀림없지만 그렇다고해서 ‘전부 아니다’식의 직접대입은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요 과거를 인정치 않으려는 과거 도피적 현실 기득권 층은 아닐까
80년대 초 어느 해인가 이른 봄
숙직하다가 지서 K순경으로부터 12시가 다 된 시간에 전화를 받았다
"김주사님! 저기 두승산(斗升山) 정상에 도깨비불처럼 불이 커졌다 적어졌다 하는데요 지금 당장 올라가야 하겠는데요?"
촌놈은 한 밤중에 전화를 받고 황당해서
"그래요? 근데 지금 꼭 올라 가야 하는 가요? 내일 아침에 가면 안 될까요?"
그러나 답은 일관되었다
"지금 가야 돼요"
일단 두려운 마음에 나는 사무실에 있는 후레쉬를 준비하고, K순경은 칼빈에 실탄을 장전한채 오르기 쉬운 입석리로 급히 오토바이를 이용해 이동하였다.
어떨때는 커졌다가 어쩔때는 작아졌다 하기를 반복하는 것이 밑에서 본 불은 분명 도깨비불과 흡사했다.
입석과 예천 리장을 밤중에 깨워 7~8명이 계곡을 따라 오르기 시작한 것이 새벽 1시 반쯤 되었을까.
해발 444미터의 두승산은 달빛이 휘헝찬 달밤이라지만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고 갓난애기 소리를 내고 있는 산짐승 소리는 산을 오르는 사람기분을 영 잡치게 하는 촉진제였다.
혹시라도 지나가는 길옆에 산새들은 우리를 보고 놀라 ‘푸드덕’하고 날라 갈라치면 우리일행도 함께 놀라 오금을 저렸다.
수풀을 헤치고 바위산을 기어올라 중간지점에 있는 암자에 도착했을 때 2시가 넘었을까. 산정산에 불난 것을 모르고 삼매경에 빠진 스님은 밤중에 나타난 밤손님에 놀란나머지 도대체 문을 열어주려 하지 않는다.
입석리 리장의 거듭된 통성명에 그때서야 목소리를 알아들었는지 문고리를 해제해 주었다.
“왠 일로 이장님이 이 밤중에 여기까지 왔소?”
하시며 되래 우리 일행에게 이유를 물었다.
입석 리장 왈
"지금 두승산 정산에 불이 났어요"
암자 위 정상에 불이 난 것을 까마득하게 모르는 스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방법이 없겠냐고 했더니만 지금 올라온 숫자로는 정상까지 올라가 진화는 어렵다며 사람들을 더 모아야할 것이라고 한 수 가르쳐 주었다
우리 일행중 일부는 마을로 응원군을 구하러 내려가고 일부는 잠시 눈을 부치기로 했다.
그 시간이 새벽 2~3시경 암자 한쪽 방을 차지한 우리는 눕기는 누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두어 시간이나 흘렀을까 저 산밑에서 사람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이른 새벽에 마을에 비상이 걸려 올라 오는 사람들이다.
마을사람들이 삽이며, 괭이며, 낫이며 톱이며 진화장비를 하나씩 가지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먼동이 트면서 본격적인 산불진화작업이 시작되었다. 쌓이고 쌓였던 낙엽에 붙은 불은 쉽사리 진화되려는 기색은 없고 더구나 말라 버린 소나무 고목은 불을 감싸안는 화로가 되어 있었고 바람이 살랑살랑 불라치면 또 다시 환하게 일어났다
산이 높다보니 그동안 간벌(間伐)이 이뤄지지 않아 불붙은 소나무밑 뒷 불처리란 매우 힘든 작업이었고 날이 완전히 밝어서야 진화는 빨리 진해되었다. 직원들도 이미 다 진화에 동참했다.
이내 정상에 오르자 화재 근원지가 발견되었다. 아무래도 전날 등산객들이 산에 올라와 뭐 좀 구워먹고 잔불정리를 하지 않고 하산했던 것이 산불로 옮겨 붙은 것으로 추측되는 대목이었다
낮에는 그리 표가 나지 않았지만 밤이 되자 도깨비불처럼 환하게 보였고 쌓여있는 낙엽에 붙은 불은 바람이 불면 크게 일어났다가 그렇지 않으면 조금한 불씨로 남아 면소재지에서 바라보는 그 산불은 분명 도깨비불임에 분명 했다.
몇몇사람의 실수로 400m가 넘는 산을 밤중에 오르는 수고를 감내해야 했던 일선행정으 말단 공무원들,
우리야 공무원이니까 그렇다손 치더라도 새벽에 동원된 마을사람들의 고생은 어찌하고....
예부터 봄 불은 ‘이으시불(여우불)’이라 하지 않던가
일선기관에 있다보면 이제는 산이 완전히 우거져 봄과 가을엔 항상 대기 상태다.
그 언젠가 군청에 있을 때 옹동면 상구산에 산불이 발생하여 전 청원이 동원되어 날밤을 새웠지만 결국 사람의 힘이 아닌 비의 힘을 빌어서만 진화했던 아픈 기억이 나로선 지금도 생생하다 .
영원면 월산쪽에서 바라본 두승산(우측능선이 유선사가 있다)
*두승산 -
높이는 444m로, 정읍시에서 약 12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고부면을 감싸고 있는 형상이다. 후미진 능선과 계곡, 운선사·보문사와 같은 사찰을 거느리고 있다. 정상에서는 정읍시와 고창군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며 내장산·방장산·입암산 등 명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행은 고부면 입석리를 기점으로 한다. 영원면 운학리 쪽으로 약 300m 지점에 유선사·두승산성지라는 표시판이 있다. 우측의 비포장도로를 돌아서 오르면 유선사에 이른다. 유선사 뒤쪽의 휴식공간을 지나서 올라가면 정상에 이른다. 정상에는 큰 바위와 나무, 그리고 잔디가 서로 어우러져 휴식을 취하기에 좋다.
대중교통편은 정읍시 공용터미널에서 하차하여 고부-영원행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고부면 입석리에 도착한다. 두승산이 있는 정읍시는 동학농민운동의 시발지이자 주요무대이다.
특히 고부면은 동학농민운동의 진원지로 모의탑이 세워져 있다. 덕천면의 황토현 전적지(사적 295)를 중심으로 고부관아터·만석보터·
전봉준 선생 고택지(사적 293) 등 많은 관련 유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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