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적
지금 애들은 노는 것도 내가 어렸을 때 하고 사믓 다르다.
지금 애들은 앉았다하면 컴퓨터 게임이다.
둘째 일곱 살배기도 날마다 컴퓨터를 하려고 하니 말이다
요즈음 애들의 놀이가 대부분 그러하듯 혼자 하는 게임이 많다
휴대하고 다니는 게임기가 그렇고, 장난감들도 그렇다
그러나 나 클 때 그때는 개인적으로 하는 게임이라고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대부분 여럿이 해야만 게임이 운영되는 집단놀이가 주였다.
한 시대의 놀이 문화도 그 시대의 시대상황과 사회의 변천, 문명의 발달 등과 많은 연관을 갖는 것 같다.
국민학교 때 가장 많이 했던 것은 살이(당시는 그냥 ‘사리’라고 불렀다)라는 놀이.
그 사리라는 놀이가 무슨 뜻인지 지금도 그 어원을 명확하게 찾지 못했지만 아마도 ‘살이’가 아닌가 싶다
댄깡사리, 오징어사리, 그리고 자치기, 궁기(군기)사리, 숨바꼭질, 옷뺏기사리, 구슬치기, 땅뺏기사리,
딱지치기(패치기), 못치기, 전표치기 등등
이 사리는 보통 두편으로 나눠 시발점에서 종점까지 상대편의 계속적인 방해와 도전을 받으면서
최후의 하나가 죽기까지(여기서 죽는다는 것은 게임에서 하나씩 상대편에게 져서 퇴장하는 것을 말함) 게임이
지속되고 거기서 지면 공격과 수비가 뒤 바뀌어 다시 시작하게 된다.
댄깡사리는 장소가 좁아도 가능하였지만, 오징어 사리만큼은 장소가 그래도 큰 운동장이나
추수가 다 끝난 동네 큰 밭이있어야만 가능하였다
특히 남의 밭에 주인의 허락없이 무단으로 그린 그 밭은 맨날 자치기나 오징어 사리를 하다보면 땅이 다져져
다음해에는 농작물을 심기위해 땅을 일구려면 엄청난 힘이 들어 쟁기 보습이 부러지거나 괭이자루가 부러지는 날이라도 되면 동네 애들에 대한 밭주인의 원망은 하늘을 찌르게 된다
그래서 놀지 못하게 밭주인은 미리 갈아엎어 놓거나 이곳 저곳을 파 놓던지 아님 지키고 서 있다가 애들이 몰려오면 참새 쫓듯이 애들을 몰고 다니기도 했다
제일 우리 동네에서 잘 애용했던 곳이 우리 집 뙈밭(띠밭) 밑에 있는 치경이형네 밭이었는데
그것은 햇볕도 잘 들거니와 우리집 선산이었던 사당봉이 북쪽을 가로 막고 있어 우리들 놀이터로는 제격이었다
자치기와 오징어. 뎅강사리가 주로 낮에 하는 놀이라면
여름 밤에 많이 하는 놀이는 술래잡기, 군기사리, 옷뺏기사리를 주로 하거나
아니면 우리 집 앞과 병식이형네, 연진이형네 집 앞을 편을 갈라 도는 릴레이달리기를 하곤 했다.
그리고 날씨가 더우면 지금은 메우고 없어졌지만 득주네 집 앞 우물에서 야음을 타 등목을 하면서 무더운 여름밤을 세웠다
머슴아들이야 펜티만 입고 등목을 해도 그 당시 흉이 아니었지만
계집애들은 그렇게 할 수 없을 뿐더러 하더라도 몰래 집안에 있는 우물에서 하다보니
혹시라도 그런 첩보가 들어오면 머슴아들의 야음을 탄 미행은 바로 결행되곤 했다
이렇듯이 옛날의 놀이는 여럿이 합동하지 않으면 안되는 게임,
그러면서도 개인보다는 다중을 , 인내와 화합을 배우는 놀이였다면
지금의 놀이는 독자적이고, 개인적이며 이기적인 놀이가 다반사를 이루는 것 같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해버린 어린들의 놀이문화
놀이문화 자체가 개인주의적이고, 적대적이다
지금은 그 놀이만이라도 할만한 애들도 촌에선 눈을 씻고도 찾아 볼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