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순교의 터 해미 읍성

goldenfiber 2009. 1. 4. 22:54

 

 속칭'해뫼'라고 하는 이곳 해미는 조선 초기에는 병마 절도사가 근무했고, 조선 중기에는 현으로 축소되면서도 지역 통치를 했던 곳으로 정부의 박해가 시작되자 천주교 신자를 국사범으로 다스려 각 가지 방법으로 처형을 하였다

그리하여 해미 진영의 서문 밖은 옛날 미신에 부정한 것은 서쪽에 버린다는 것에 따라 항상 천주학 죄인들의 시체로 산을 이루고 그 피로 내를 이루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곳 서문 밖은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장으로 그리고 이웃 여숫골로 끌려가는 천주교자들의 통로가 되었다

지금 이곳 순교지에는 자리개질해서 죽였던 돌다리가 보존되어 있는데 1956년 서산성당으로 이전 보존되다가 1986년 이곳에 귀환하고 1989년 순교 현양비가 그 곁을 지키고 있으나 순교사적지로서 격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서문(지성루-탱자나무로 성을 이뤘다는 뜻)

 

 

 

 해미읍성의 정문(남문)

 옥사

 

 

 

 

  회화나무(호야나무)

 해미진영은 대 박해(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오박해, 병인박해)중 병인 대 박해 때에만 처결의 숫자가 1천여명에 달하고 있어 그 이전 80년 간에 걸친 해미진영의 지속적인 천주교 신자 처결의 숫자는 수천명에 이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곳 감옥터를 1950년대에 해미 공소 신자들이 식량을 절약하여 1,800여평을 확보하고 공소강당을 세웠으나 1982년 정부의 문화재 관리정책으로 공소강당이 철거되고  현장에 순교 기념비만 남아 있다.

 

2014. 8월

이 곳 순교자중 인언민 마르티노, 이보현 프란치스코, 김진후 비오 세분이 하느님의 종 124위 복자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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