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정해박해의 진원지 곡성성당

goldenfiber 2009. 1. 17. 23:06

 

 전남 곡성군 곡성읍에 위치한 곡성성당의 역사는 그리 멀지 않다(군청 옆)

하지만 정해박해의 태동을 가져온 사건의 시발 점이라는데 역사적 의미가 있다.

이자리는 본래 곡성현의 객사가 있었던 곳이었는데 정해박해가 시작되자 이 곳 객사가 천주교 신자를 잡아 가두는 임시감옥으로 변하였다

 

 

 

정해박해는 이곳 곡성 덕실마을의 한 옹기점에서 일어난 조그만한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복원된 감옥)

 

 하날못, 이 주변을 둘러 십자가의 길 14처가 있다

 십자가의 길

 

 

 성당내부는 화려하지 않고 검소해 보인다

 (성당의 창은 스테인드 그라스로 각 성인들을 표현하고 있다)

 

 

 

 본디 이곳 곡성지방의 천주교 토양은 1815년경 을해 박해를 피해 이 곳으로 온 신자들이 정착하면서 이뤄 졌는데

이들은 대부분 생계도 유지하고 신앙생활도 유지하기 위하여 옹기를 굽는 일을 하고 살았다

1827년 가마를 여는 축하연에서 신유박해 때 순교한 한덕원(토마스)의 아들인 한 백겸이 평소 행실이 좋지 않고 주사도 심하여 주위사람들로 미움을 샀던 터에

이날 술이 거나하게 취하여 주막집 여주인에게 손찌검을 하자 주막집 주인내외가 천주교 서적 몇점 등을 포함해서 곡성현감에게 고발을 했고

곡성 현감은 관내에 천주교 신자가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여 바로 닥치는 대로 천주교 신자들을 잡아 들이기 시작했다

 

곡성현감은 당시 객사(현 곡성성당 자리)를 임시 감옥으로 개조하여 천주교 신자를 잡아 가두고 고문하여 많은 신자들을 배교 시켰고

끝까지 배교치 않는 신자들은 전주 감영으로 압송하였으며

이를 피해 신자들이 산속으로 피하자 이들을 쫓아 관원들은 인근 순창, 임실, 용담, 금산, 장성, 전주까지 탄압의 손길을 펼쳤다

전라감사도 이에 동조하여  이곳 곡성뿐만 아니라 그 탄압의 강도를 전라도 전 지역으로 확대하고 이런 사항들이 조정에 보고 되자 그 탄압의 손길은 경상도, 충청도, 서울 등지까지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다

 

이 정해 박해는 그해 음력 1월에서 시작하여 5월까지 4개월동안 비록 짧은 기간동안 전개된 박해였지만 특히 전라감사의 추위와 굶주림을 이용한 악명높은 고문은 많은(500여명정도 추정) 천주교 신자들을 배교 하게 만들었고 끝까지 배교하지 않아 유배되거나 수개월동안의 투옥생활, 모진 고문 등으로 인하여 많은 순교자들이 태어나기도 하였다

 

그 박해이후 130년이 지난 1957년, 광주교구에서 주관이 되어 당시 객사였던 곳에 곡성성당을 세우고, 최근에는 감옥을 복원하고 감옥터와 가마를 잇는 십자가의 길 등을 조성하는 등 천주교 성지로서 서서히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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