智士 칼럼(신문)

줄서도 손해 안봐야

goldenfiber 2010. 10. 24. 18:38

 

줄서도 손해 안 봐야

김철모(시인)


우리는 흔히 그 나라의 국민수준을 평가 할 때 줄서는 의식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줄선다”는 뜻은 ‘군대는 줄을 잘서야’하고 ‘줄 잘서야 출세한다’는 말이 있는가 하면 또 하나는 버스 타는 데 줄을 선다든지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것일 수 있다.

요즘 단풍철이다. 예전에 정읍시내에서 살던 필자는 내장산을 찾았다. 내장산의 가을단풍은 가히 남한의 소금강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장군봉에서 시작한 오색 찬란함은 서래봉에 와서 그 극치를 다한다. 당시 대중교통에만 의존해야 하는 때라 단풍 절정 시기이면 하루에 10만명이 찾아들어 인산인해를 이루는 내장산이었다. 인파에 파묻혀 고내장과 사랑의 다리, 원적암을 거치며 화려한 외출을 나온 전망대와 장군봉의 정취를 만끽했던 하루, 북새통을 이루는 승강장에 도착한 우리는 여느 관광객들과 같이 집사람, 네 살배기 큰애와 함께 승강구를 중심으로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섰다. 그러나 정연했던 승강장은 시내버스가 도착하자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서로 먼저 타기위해 욕설과 몸싸움이 벌어지고, 아우성과 함께 부모 손을 놓친 아이들의 울음소리, 자식을 찾는 부모의 외침, 급기야 배낭이 차안에 던져지고 창문을 통해 기어오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기차례를 기다리며 차분했던 사람들도 이에 합세하기 시작했다. 한바탕 승차전쟁이 끝나자 버스를 타지 못한 사람들은 목숨 건 경기에서 패한 사람처럼 초취한 모습이었고, 필자도 초라하긴 마찬가지였다. 바로 줄서 있는 사람들이 손해 본 그 현장이었다. 그러면서 어린이에게는 질서를 지켜라, 줄을 서라 어떻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해 말에 교수신문의 사자성어는 방기곡경(旁岐曲逕-일을 순서대로 정정당당하게 하지 않고 수단을 써서 한다)이었고, 직장인들이 뽑은 사자성어는 구복지루(口腹之累-먹고 살기를 근심한다)였다. 세종시문제로, 혁신도시와 기업도시문제가 회자되는 가운데 전북도는 약속했던 5개사업소를 동부권으로 이전을 마쳤다. 줄을 선다는 것은 바로 인내이자 약속이다. 줄을 선다는 것은 기다림이다. 설령 자기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잠시 고통이 있더라도 질서를 지키는 것은 모두가 편하자는 것이요 반드시 자기 차례가 온다는 믿음 하나로 기다리지 요행을 바라고 줄을 서지는 않는다. 새치기가 용인되거나 줄을 서면 손해 보고, 줄서는 사람이 바보 취급받는 사회가 지속된다면 누가 과연 줄을 서겠는가. 줄서도 손해 안보는 사회, 그 사회야말로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노력해서 바로 잡아야 할 국민의 덕목이 되었으면 한다. 공정한 사회...

 

 2010년 10월 20일 전라일보 15면 '젊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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