智士 칼럼(신문)

11월 11일에 만난 사람

goldenfiber 2010. 11. 11. 16:50

 

11월 11일에 만난 사람

김철모/시인


11월이 가을과 함께 깊어 갑니다. 예년에 비해 일찍 찾아 든 찬 바람은 겨울 마중을 하고 우리의 옷깃을 세우게 합니다. 설악산에 이어 한라산에 하얀 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벌써 겨울을 실감케 합니다. 26년 전의 우리 모습을 생각하게 합니다. 1984년 늦가을 11월, 우리는 함께 호미걸이하고 하얀 카펫을 나란히 걸었습니다. 세상 물정도 제대로 모르면서 세상이치를 다 터득한 사람처럼 하객들의 축하를 받으며 새 출발을 하였지요. 지금 돌이켜 보면 늘 당신이 이야기 하는 것처럼 ‘다시하면 결혼식하면 정말 멋지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참으로 어설픈 결혼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의 둥지를 옮기는 세월 속에 큰 아이와 작은 아이를 얻는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큰 선물을 받았지요. 생각해 보면 지난 26년 동안 당신은 참으로 고생 많았습니다. 맞벌이 생활속에 모든 살림을 도맡아 꾸려 나오면서도 내색한번 제대로 하지 않고 오직 하나 사무실 일 밖에 모르는 나를 믿고 끝까지 밀어 주었습니다. 휴일이 따로 없고 퇴근 시간이 따로 없는 사람을 남편이라고 마냥 기다리고 바라보아야 했던 당신, 그간 내가 너무 많은 죄를 지었나 봅니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또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키운 당신의 노력 감사할 뿐 입니다

오늘 11월 11일을 맞이하면서 여러 가지로 감회에 젖습니다. 흔히들 오늘을 ‘빼빼로 데이’라고 이야기 합니다만 11월 11일은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는 날인가 봅니다. 우리 결혼식 날이 11월 11일 이었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동안 날밤 세워왔던 도 예산을 의회에 넘기는 법적 시한 또한 11월 11일이니 우연치고는 기구한 운명의 장난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제 큰 아이도 커서 취직을 하고 둘째는 대학 진학을 앞둔 시점, 이제야 당신에게 관심을 갖게 되어 정말 미안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해가 바뀔 때마다 올해만은 의미 있는 이벤트를 만들어 보겠다는 다짐이 강산을 두 번이나 바꾸고도 몇 년입니다. 올해도 우리 결혼식 26주년을 자축하려 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조촐한 시간을 이번에도 제대로 갖지 못 하는가 봅니다. 하지만 실망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주말이 우리를 기다리고 아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니까요. 11월 11월에 만난 사람, 그래도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열심히 살아 온 사람이니까요. 당신을 사랑 합니다.

 

2010년 11월 11일 전라일보 15면 '젊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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