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秋夕) 소회
김철모 / 시인
긴 추석 연휴가 끝났다. 예년보다 철이 빨랐던 이번 추석은 그러니 햅쌀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징검다리 연휴니, 샌드위치 연휴 등으로 불리어 졌던 올 추석연휴는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적게는 6일, 길게는 9일까지
휴식의 시간과 가족과 어울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긴 연휴가 되었다.
긴 추석 연휴 덕분에 교통량이 분산되면서 귀성 길이나 각자의 일터로 돌아가는 길이 예년의 추석보다는 수나롭던 것이 다행이다.
그렇지만 오는 길이나 추석 당일 내린 비로 이동하는 사람들은 불편하였고,
성묘 또한 제대로 하지 못한 부분은 올 추석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필자 역시 차례를 지내고 시골 선산, 서당봉을 찾았지만 비가 그치지 않아 집안어른들과 상의하여 내년으로 기약하고
올해만은 약식으로 성묘를 마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기상관측 이후 처음으로 서울 등 수도권 지역에 추석 전날 내린 국지성 폭우로 인하여
명절을 명절답게 보내지 못한 사람들도 많아 보인다.
재수하고 있는 작은 아이가 추석에 내려오지 않겠다고 하더니 학원이 갑자기 침수되면서 식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불가피 추석 당일 집에 돌아와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 진 걸 보니 서울 쪽의 호우 피해는
TV 등으로 보던 상황보다는 더욱 심각한 듯 하다.
그러면서도 올 추석 연휴가 길다보니 자신들의 시간으로 일군 사람들이 다른 때와 달리 많아 보인다.
일찍이 벌초할 때 성묘까지 다 마친 사람들은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던 가족들과 콘도로, 제주도로, 해외로 여행을 떠난 사람들이
예년에 비해 많기 때문이다. 요즘은 콘도로 가기 전 차례 상을 미리 예약하고 떠난단다.
그러니 요즘 선령들은 첨단 유.무선 장비로 무장하지 않으면 이제 제삿밥도 제대로 찾아 먹기 힘든 시대가 되어 버렸다.
미리 예고라도 한 집을 빼 놓고는 자손들이 소식도 없이 콘도로 여행을 떠나 거기에서 차례 상을 차리다보니
미처 연락 받지 못한 조상은 예전처럼 시골 집을 찾아 갔다가는 자식들과 만나기는 커녕
밥도 제대로 얻어 먹지 못하는 낭패를 보기 일쑤니 말이다.
콘도로 떠나기 전 그래도 동방예의지국 후예들이라 차례 상을 예약하고 간다니 다행스런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미리 조상에게 알리는 예까지 갖춘다면 아쉽지만 자손들의 정성에 조상님들이 반하지 않을까.
벌초 겸 성묘를 함께 하거나 차례도 콘도에서 차리는 등 시간이 흐를수록 변해가는 요즘 추석 풍속도를 보면서
가까운 시일 내에 추석을 첨단 문명의 이기로 지내지 않을 까 조심스럽게 예견을 해 본다.
위성을 이용하면 하늘나라가 더 쉽게 통하지 않을 까....
2010. 9. 27 전라일보 15면 '젊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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