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한국 최초순교터 전동성당(2)

goldenfiber 2012. 2. 5. 16:22

 

 

 

 

 

전동 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尹持忠, 1759-1791년)와 권상연 야고보(權尙然, 1751-1791년)가

1791년 신해박해 때에 처형당한 풍남문(豊南門)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세워진 성당으로 순교지를 보존하고 있는 신앙의 요람이다.

또한 1801년 신유박해 때에는 이곳에서 유항검 아우구스티노(柳恒儉, 1756-1801년)와 유관검(柳觀儉, 1768-1801년) 형제가 육시형을,

윤지헌 프란치스코(尹持憲, 1764-1801년), 김유산 토마스(金有山, 1760-1801년), 이우집(李宇集, 1761-1801년) 등이 교수형을 당했다.

 
전주 중앙 성당이 세워지기 전까지 전주교구 주교좌 성당이었던 전동 성당은

초대 주임은 보두네(Francois Xavier Baudounet, 1859-1915년) 신부가 1908년에 착공해 1914년에 외형공사를 마친 성당이다.

일제가 신작로를 내기 위해 처형지인 풍남문 성벽을 헐자 그 흙과 돌로 성당 주춧돌을 세웠고  벽돌은 당시 공사를 담당한 중국인 기술자들이 직접 구워 낸 것을 사용했다고 한다.

중국인 벽돌공 100여명이 동원돼 전주성을 헐은 흙을 사용해 벽돌을 직접 굽고, 석재는 전북 익산의 황등산에서 캔 화강석을 말 네 필이 끄는 마차로 운반해 왔고, 목재는 오늘의 치명자산을 매입해 벌목하여 사용했다.
 
공사 기간 동안 전주 시내에 사는 신자들은 물론 진안, 장수, 장성 등지에 사는 교우들이 밥을 지어먹을 솥과 양식을 짊어지고 와 손마디와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히고 어깨에 혹이 생기도록 자원 부역을 했다.

신자들의 희생적 노력 끝에 공사를 시작한 지 만 7년 만인 1914년에 전동 성당 외형공사를 모두 마쳤다. 이듬해에 초대 주임 보두네 신부는 성당 완공을 못보고 1915년 5월 이질에 걸려 57세로 선종했다. 그래서 성당 내부 공사는 제2대 본당 주임인 라크루 신부에게 맡겨졌다.

라크루 신부는 193평에 달하는 성당 내부공사를 1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묵묵히 진행하여 마침내 1931년 6월18일 대구교구장 드망즈 주교 주례로 성전봉헌식을 거행했다. 이처럼 전동 성당은 착공에서 성전봉헌까지 23년이라는 대역사 끝에 완성된 성당이다

 
호남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서양식 건물로 1981년 9월 25일 사적 제288호로 지정된 전동 성당은

순교지를 알리는 머릿돌과 순교자 권상연과 윤지충, 유중철 · 이순이 동정 부부를 채색화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눈길을 끈다.

또한 순결을 상징하는 흰 대리석으로 조각된 유항검과 동정 부부 기념상이 있고 '한국 최초 순교터'라는 비문과 함께 한국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의 기념 동상을 성당 우측 도로방향에서 볼 수 있다.

 

전동성당은 성지로 뿐만 아니라 고전미와 풍광이 좋아서 때에 따라서는 '태극기 휘날리며' '약속' 등과 같은 영화 촬영지로, 또 예비부부의 웨딩촬영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굿 뉴스 일부 수정)

 

 

 

 

 

 

 

 

 

한국 최초의 순교터였던 전동성당은

인접한 경기전과 풍남문과 어울려 전주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유적이다

더구나 한옥마을 입구에 위치하여 수 많은 천주교 신자뿐만 아니라 많이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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