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요골공소 성지

goldenfiber 2013. 6. 19. 22:47

 

공소뒤로 멀리 묘지에 주님상이 보인다

지금부터 130년 전, 이 곳에 주님의 씨앗이 하나 둘 피기 시작했다.

공소 앞마당 화단에 역대 회장과 공소출신 사제들의 명단들이 돌에 새겨져 있다. 

초기 공소건물의 상량이 공소 옆에 보관되어 있다.

 

 

 

공소 담 밖, 쇠퇴해진 공소 분위기를 다시 세우려는 듯 몇 그루의 꽃들이 우릴 맞고 있다

 

 

요골공소 성지

 

시골 작은 마을에 믿음의 씨앗을 뿌려 새싹을 나게한  작은 공소가 자리잡고 있다.

충남 공주시 유구읍 명곡2리에 위치한 요골에 천주교가 전래된 것은 1884년 이전으로 전해 진다

충청도 주로 남쪽지방의 선교를 도 맡았던 두세신부(1853~1917)가 아산 공세리 성당에서 공주성당(현 중동성당) 주임신부로 발령받아 가기 전

이곳에서 얼마간 머물렀던 곳이며, 본래 교우촌이었던 이 곳을 두세신부는가 이웃인 사기점골 공소와 함께 1883년 공소를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1897년 6월 공주로 가기 전 당시 요골의 여건을 소개한 뮈텔 주교에게 보낸 서신 내용으로 볼 때 기낭진보안 신부가 초대신부인 것으로 보인다.

이 곳 교우촌은 경기도 고양출신이었던 이 화진 배드로 회장이 군난을 피해 숨어 다니다가 이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고,

선교사들이 이 곳을 순방하게 되자 자신의 집을 공소로 삼아 선교사들을 맞이하였으며, 인근에 흩어져 살고 있는 교우들을 찾아내어 요골에 모여 살도록 하였다

 

처음의 공소는 배실 쪽 이회장 댁이었으며 1913년 김덕기 막시모 회장때 요골로 공소를 옮겨 왔으며

자신의 집 골방을 공소로 3년간 사용하다가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다

초기공소에서는 이씨, 김씨, 성씨, 복씨, 구씨 등이 살았고 이들이 차례로 회장을 맡아오면서 공소 신자들을 돌봐왔다 

요골공소에서는 비록 작은 규모의 시골 마을이지만 신자들의 신앙심이 깊어 구전회 신부, 김운성 신부, 김병상 신부, 구자오 신부, 구자윤 신부,

김용관 신부, 구본만 신부, 구본홍 신부, 구본국 신부등이 나온 성소로도 유명하다.

1915년 한때 신자수가 무려 158명에 이르는등 번창하였으나 이 곳도 근대화의 바람이 불면서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하는 그 거센 바람은 거스르지 못했다.

 

이처럼 유서 깊은 이 곳 공소도 이제는 점차 신지들이 점차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13세대 가량이 남게 되었다.

따라서 남아 있는 신자들은 매주 주일이면 함께 모여 공소에 모여 공소예절을 행하고 있으며,

지금은 교통의 발달로 주일이면 본당으로 미사참례를 가게 되어 공소에서 구역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출처: 요골성지 홈페이지(www.yogol.or.kr), 굿 뉴스

 

 

공소에 가보면

2003년 9월 21일, 요골공소설립 120년주년을 맞아 공소 앞마당에 기념 표석을 마련하여 요골공소 역대 회장과 이 곳 출신 사제들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

  

성지를 느끼면서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문명의 이기인 네비게이션이 아니었더라면 이처럼 유서깊은 성지를 어떻게 찾아 올 수 있을까?

성지 대부분이 그 옛날에는 산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야만 인간의 발걸음을 허락했을 정도의 꼭꼭숨은 오지라서

예전처럼 물어물어 성지를 찾아 오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공인된 성지에 대해서는 행정기관들과 협조해서 주요 도로 이정표에 그 이름을 남기는 작업도 우리가 할 일로 보인다.

비록 지금은 여러가지 여건상 공소가 활성화 되지 않지만 신자들의 피정처로, 때론 특별 강론터로 활용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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