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지금

팥죽

goldenfiber 2006. 12. 22. 09:16

오늘은 동짓날이다

동지는 원래 24절기중 대설과 소한의 중간에 있고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로 태양력과 태음력이 일치하는 날이다 

 
동짓날에는 동지팥죽 또는 동지두죽(冬至豆粥), 동지시식(冬至時食)이라는 오랜 관습이 있는데,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여기에 찹쌀로 단자(團子)를 만들어 넣어 끓인다. 단자는 새알만큼한 크기로 만들기 때문에 '옹시래미(새알심)'라 부른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동짓날은 음의 기운이 극에 달한 날이지만 이날을 시작으로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때문에 양의 기운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한다.
 

우리 조상들은 전염병이 유행할 때에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하며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이집 저집에서 상가에 보내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상가에서 악귀를 쫓기 위한 것이며,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의 벽에 뿌리는 것 역시 악귀를 쫓는 주술행위의 일종이다.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나 재앙이 있을 때에도 팥죽, 팥떡, 팥밥을 하는 것은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동짓날에도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동짓달 즉 음력 11월중 동지가 초승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한다

 

어릴적 어머니는 동짓날이면 늘 새알심(세미) 팥죽을 쑤곤 했다

이른 아침에 팥죽을 쑤어 대문에서부터 뿌리기 시작하여 집안 곳곳마다 빨간 팥죽을 뿌린다

그러다 보니 집안 벽체가 윗쪽으로 백회를 바른 우리집은 늘 어머니가 솔 잎으로 뿌려 그린 팥죽그림이 산사의 탱화마냥 우리집을 꾸미고 있었다.

 

그날 하루는 먹기 좋던, 먹기 싫던 아침부터 저녁까지 팥죽으로 하루를 나야 한다

그리고 그날 아침 우리집에서 쑨 팥죽을 이웃집에 돌리고, 이웃 집에서도 자기 집에서 쑨 팥죽을 우리집에 다시 돌려지는 풍습이 있었는데 작은 것이라도 나눠먹는 미풍이 있었다.

 

시골에는 상을 당했을 때 팥죽을 부조하게되는데 부조로 들어 온 팥죽은 집에 따라 규모가 달랐고,

몇동오(동이) 들어 왔네하여 부의록 뒤쪽에다 다 기재 해놓고 나중에 팥죽을 보내 준 집에서 상을 당하게 되면 되갚는 아름다운 품앗이 팥죽이 있었다.

어릴적 동네에 상가가 생기면 출상(발인) 전날 자식들을 세워놓고 빈 상여를 가지고 상여 메는 연습을 하는 ''데오래기'(정확한 어원은 알수가 없음)가 끝나고 나면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팥죽을 나눠 먹는 팥죽 잔치가 열리곤 했다.

 

그 어릴적 우리집은 팥죽을 동짓때만 먹는게 아니라 여름에도 많이 먹었다

 

지금이야 팥죽은 별미라서 간간히 칼국수집을 찾아 그 맛을 보지만

어릴적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때는 별미라기보다는 먹을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도수로 밀가루 공사판에서 벌어 온 밀가루를 쌀밥 대용으로 식구대로 둘러 안자아 반죽을 하여 빈대떡 모양으로 얇게 만들어 이를 칼로 썰어 팔팔 끊는 팥죽에 넣어 열명 남짓된 전 가족이 저녁에는 마당에서 멍석을 깔고 의당 팥 칼국수로 식사를 하곤 했다

 

지금은 집에서 팥죽을 쑤는 집이 거의 없으니 동짓날도 팥죽으로 먹어 볼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몇해 전까지만 해도 어머니가 계실때는 그래도 시골에 가면 한 사발씩 얻어 먹었는데 이제 그 기회도 없어져 버렸다

 

또한 기회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썩 좋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더군다나 양념통닭과 피자에 입맛이 길드려져 있는 요새 아이들은 팥죽 먹으로라고 하면 무슨 쇠태 씹은 얼굴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도 가끔 팥칼국수를 먹고 싶다

물론 먹고 나면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신물(시골 말로 목어리 내린다)이 나지만은....

 

그래서 지금은 칼국수 집에 가 바지락 칼국수를 종종 먹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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